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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ug 31. 2018

연봉이 얼마인데?

M과 난 모임이 아니면 볼 일 없는 관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락할 때면 늘 목적이 있었다. 우린 그렇게 멀고도 먼 사이라서 나는 결혼식에도 그녀를 초대하지 않았다. 청첩장을 보내면 서로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았다.     




  M이 2년 만에 내게 전화해선 불쑥 “지금은 뭐해?” 하고 물었다. 잠시 생각했다. 난 지금 전화통화 중인데 뭐하냐고 묻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바보 같은 생각인 거 알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회사 다니지 뭐.”라고 얼버무렸다. “어디?” “정규직이야?” 그녀는 스피드 퀴즈 같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다 “연봉이 얼만데?”라고 물었다. 잠시 멍해졌다. 


  “그냥, 뭐, 별로 못 받아. 하하하….” 


  이런 게 헛웃음일까. 분명 표정은 굳어졌는데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나의 시큰둥한 대답을 듣고는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의 근황을 전했다. A오빠는 지금 ○○ 회사로 이직했대, B는 그때 그 작은 회사에서 잘린 것 같아. 본인은 아니라는데 딱 보면 알지, C 언니는 요즘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돈 진짜 잘 버는 것 같아. 나는 “아, 어, 그렇구나.”하며 수다 사이의 적막을 채워줄 뿐이었다. 그러다가 M은 본인의 소식을 전했다. 아마 이것이 그녀의 본론일 터다. 


  “나 K회사로 옮겼어.” 


  연봉이 높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약간 이상한 상황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축하해줬다. 그토록 입사하고 싶어 했던 회사였으니까. 그녀는 회사 이직 스토리를 15분간 들려줬다. 경청하지 않아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은 이랬다. 


  “연봉도 많이 올랐어.” 


  순간 나도 “연봉이 얼만데?”라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꾹 참고 “참 잘 됐다.”며 다시 축하를 해줬다. 그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랬다. 앞으로 본인이 이 회사를 쭉 다니면 최고 얼마까지는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훨씬 더 바빠질 것이다, 나는 결혼보다는 일이 좋은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벌어서 나 혼자 사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M은 본인의 생각과 미래의 계획을 20분쯤 더 쏟아낸 뒤 갑자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너도 얼른 좋은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물론 기혼자라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연봉 제대로 받고 일해야지. 계속 그렇게 일하면 불안하잖아. 아니다! 차라리 C언니처럼 좀 큰 회사 일을 받아서 프리랜서로 일하던가!” 

  “그래, 그래. 이직한 회사 업무는 어때? 재밌어?” 

  “야! 일이 재밌어서 하냐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얼마나 힘들고 어렵 고 재미없는데…. (중간 생략)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거지. 이 돈 받기 쉽니? 이렇게 받아도 빠듯한데 다른 사람들은 어찌 사는 건지.”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루하다 못해 조금 지쳐버렸다. M도 눈치는 있던 건지 “조만간 만나서 밥 한번 먹자.”라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어렸을 때 ‘돈’에 대해 이야기하면 엄마는 나를 혼냈다. 어린것이 돈을 밝힌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커가면서 만나는 세상은 참 웃겼다. 돈을 천박하게 보면서 돈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돈을 갖기 위해 애쓰고, 돈이 없다고 울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우리는 ‘돈’으로 냉정하게 평가되어 갔다. 직장인의 경우는 ‘연봉’이 평가의 조건이었다. 

  나는 삶에서 ‘돈’은 필수적으로 충족돼야 할 부분이라 믿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진정성을 가지라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이런 말들을 경청하면서도 가끔 돈이나 연봉이 확인시켜주는 ‘숫자의 차이’에 위축된다. 그러나 믿는다. 일의 목적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사회생활을 10년 가까이하고도 아직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바라보는 건지 모르겠다. 가끔 위축되는 상황 속에서도 일의 목적이 돈, 소속, 지위에 있다고 믿지 않는다. 만약 그것만으로 일에 집중해 결국 저것들을 손에 넣었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기쁠 것이다. 아주 으쓱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적의 기쁨은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더 극대화된다. 나는 이것이 약간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람에게 인생의 실패와 패배는 소득을 잃고 지위와 직장을 잃는 것일 테니까. 회사로 나를 포장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짧아진다. 인생을 살아야 할 시간은 자꾸만 길어지는데 말이다. 


  나는 일의 목적이란 ‘내가 누구인가?’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일을 선택하는 데 ‘당신이 좋아하는 일인가? 좋아하지 않는 일인가?’ 가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단순히 사회의 어느 위치에 도달하고 싶다는 목적과 돈만으로 일하다 보면, 결국 삶의 목적지를 잃게 될 것이다.     


  성공하고 행복하기 위해 일할 것인지 

  일을 하므로 행복하고 성공할 것인지    


  어느 것이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줄까? 일의 목적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왈>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래서 정규직이야?’라는 이야기 속의 지인이 생각났다. 분명 M과 나는 서로에게 뒤틀린 감정이 있었다. 나에게는 자격지심과 질투심이 있었고, 그녀에게는 나를 밟고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못난 심보가 있었다. 쓰고 보니 둘 다 어리석었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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