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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Sep 07. 2018

팀장님! 그러다 손가락 관절염 걸리겠어요


  ‘까똑! 까똑! 까까똑! 까까까까똑! 까까까까까까까까까똑! 까까똑….’


  금요일 저녁 8시 32분부터 토요일 새벽 3시 38분까지였다. 단 1분의 휴식기 없이 내 휴대폰을 두드린 메시지는 어림잡아 1,330개. 메시지 1개당 40~50글자(이모티콘과 띄어쓰기로 발생한 빈 곳 포함)로 계산했을 때 대략 5만 3,200자. 200자 원고지로 계산하면 266장. 대단하다. 단체 카톡방만 있다면 6시간 만에 중편소설 한 편이 완성된다. 개인 카톡 방으로 온 메시지와 토요일 아침에 보낸 것들까지 포함하면 장편소설 도 될 수 있다. 노장 작가들도 못 하는 걸 회사 단톡방이 해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팀장님! 그러다 손가락 관절염 걸리겠어요》가 딱이다.     




  이날은 오전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새벽 6시부터 카톡이 울렸으니까. 이 시간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해외에 있는 지인이거나 팀장이거나. 에이 설마, 오늘은 금요일인데. 에이 설마. 늘 그렇듯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오늘 일이 있어서, 출근이 좀 늦을 것 같습니다. 이따 봅시다.”     


  야호! 무두절(無頭節 : 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이다! 알람시계 대신 팀장의 메시지로 아침을 시작하다니. 개운하진 않지만, 괜찮다. 무두절이니까.

  팀장이 말한 ‘이따’는 오후 3시다. 그가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중요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날이라 모두 분주했다. 책임자가 이런 중요한 날에 개인적인 일(술 마시고 새벽 6시에 집에 들어가며 메시지를 남긴 듯)로 연차도 쓰지 않고 늦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내 업무는 대부분 프로젝트 초반에 집중된다. 기획이 잡혀야 콘텐츠 가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래서 콘텐츠가 제작되는 순서에 따라서 돌아가면서 야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완성된 콘텐츠를 크게 수정할 경우에는 함께 야근을 한다.

  이날은 내가 맡은 업무가 마무리된 날이었다. 한마디로 야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 일부를 외주로 맡긴 상태였기 때문에 관련 담당자만 남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오후 6시 30분. 나는 팀장에게 물었다.


  “오늘 제가 더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왜?”

  “없으면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여기도 8시쯤 외주업체에서 자료 받으면 끝날 테니까. 들어가.”     




  이때는 이사하기 전이라, 회사와 집의 거리도 멀었다. 이날은 유난히 도로가 꽉 막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씻고 냉장고 안에 있는 엄마표 반찬을 꺼내서 상을 차리니 8시 30분이었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가 그렇지만, 남편과 나도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이 아니면 마주 앉아 식사하기가 힘들다. 야근도 많지만 일찍 끝나도 도로가 막히는 시간이라 8시쯤 집에 도착한다. 밥 먹고 정리하면 9시가 넘고, 잠깐 거실에 앉아 쉬면 10시고, 씻고 나오면 11시가 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 평일에 집에 있는 시간은 많아야 10시간인데, 잠자는 6시간을 제외하면 4시간 정도다. 여기에 5일을 곱하면 20시간이다. 물론 집에 와서 일할 때도 많고 야근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12시간이나 될까?

  식탁에 앉아 남편에게 심야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하며 숟가락을 들었는데


  ‘까똑! 까똑! 까똑!’


  불길했다. 지금 읽을까? 나중에 읽을까? 고민하는 사이에도 메시지 알람이 멈추지 않았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메시지를 읽었다. 역시 팀장이었다. 단체 카톡방을 열어보니 구구절절 팀장의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외주업체에서 넘긴 자료를 받으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자료가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업체에서는 밤 12시가 넘어야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면서, 지금 퇴근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겨냥한 메시지를 날렸다.     


일이 장난도 아닌데, 넌 왜 늦었어? 라고 답장하고 싶었다.

  

  순화시키는 문장이나 꾸미는 문장 없이 그때의 기분을 표현하고 싶다. 그 메시지를 읽고 순간 ‘뭐 이런 未친 상황이 다 있지?’라고 생각했다. 너무 흥분해서 생각만 했는지 육성으로 나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랬었다. 나를 퇴근시키지 말던가, 퇴근 전에 얘기하던가, 본인이 일찍 출근하던가. 왜 갑자기 혼자 발광인지. 팀장의 메시지는 계속됐다.

 

  “그리고 말이야. 저번에도….”


  끝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라면서 아이들을 실신시켰던 교장선생님이 떠올랐다(선생님! 오해는 마세요. 존경했습니다. 운동장 조회시간만 빼고요). 팀장이 교장선생님과 다른 점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음성 지원 없이도 벌컥 화를 낸다는 사실 정도?     

  

실제 카톡 내용을 순~하게 정리한 이미지



  팀장의 카톡질은 자료가 도착한 새벽 0시 30분까지 계속됐다. 이제 좀 잘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도착한 자료가 엉망이었다. 팀장이 추천한 외주업체가 만든 자료였다. 일은 그 업체에서 했지만, 자료 수정은 팀원들이 했다. 또 다른 카톡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팀장은 새벽 3시까지 카톡으로 업무를 지시했고 팀원들은 각자의 집과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풍경은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rmad :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인데, 실상은 ‘디지털 메이드(Digital Maid)’였다. 나는 그때 처음 만났다. 입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밤새 화내는 사람을…. 세상에는 아직 내가 만나보지 못한 상상 그 이상의 사람들이 많겠지.    


  ‘까똑! 까똑! 까까똑! 까까까까똑! 까까까까까까까까까똑! 까까똑…’


  다음날 아침에도 카톡 메시지 알림 소리에 잠이 깼다. 오전 8시였다. 역시나 팀장의 자료 수정 지시와 관련해서 팀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만 48개였다. 몇 개의 카톡을 더 주고받은 후 더 이상 알림은 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들 바로 출근했으니까.


  월요일에 만난 친한 동료는 주말 동안에 앉아서 2킬로그램을 감량할 수 있었다며, 독한 다이어트 체험기를 내게 들려줬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기 2킬로그램 감량시키려고 팀장님은 손가락에 관절염 걸렸을지도 몰라. 이따 확인해보자. 젓가락질 잘하는지.”     




  2년 전 카카오 브런치에 올렸던 이 에피소드(제목은 ‘토요일 새벽 2시, 팀장에 게 온 카톡’이었음)는 25만이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열 받아서 로그인했다는 사람부터 이 글을 읽어보니 차라리 우리 회사는 다닐 만한 곳이란 의견까지. 직장인들의 분노 게이지를 확 끌어올려준 에피소드였다. 오죽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동료가 친구에게 이 에피소드의 링크를 받고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하루 씨. 우리 회사랑 똑같은 회사가 있나봐. 완전 우리 회사 이야기야. 이거 봐봐.”


 그때 처음으로 동료에게 고백했다. 내가 이 글을 쓴 이하루라고.


 



  혹시 궁금할지 모를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팀장은 카톡질 사건 외에도 문제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아웃소싱 회사 담당자를 만났다.


  “퇴사하겠습니다. 팀장님과 같이 일 못 하겠습니다.”


  이유를 묻는 담당자에게 팀장의 카톡질부터 사생활 침해와 성적비하 발언, 그리고 회식 강요 등 회사에서 벌어진 불편했던 모든 사건을 털어놨다.


  단순히 팀장을 신고하기 위해서 퇴사까지 들먹인 건 아니었다. 진짜 퇴사할 생각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사라질 수 없지 않은가. 보수적인 회사에서 상사와의 싸움이 얼마나 불리한 것인지, 여러 번 경험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갈 때 가더라도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퇴사의 이유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들은 척 만 척할 줄 알았던 담당자가 팀을 옮겨주겠다며 일단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휴가를 가기 전날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팀장이 퇴사를 해버린 것이다.

  그는 회사와 업무 처리로 인한 마찰 중에 “저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홧김에 뱉고 나가버렸다. 그런데 회사는 “팀장님의 결정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죠.” 하고는 팀장을 붙잡지 않았다. 팀을 옮기거나 퇴사를 하거나 휴가를 다녀와서 확실히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지금까지 그 팀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고 밍밍했던 반전이다.    



  그리고 왈> 


  “그나저나 수많은 AI 연구자와 개발자 분들! 지금 뭐하는 겁니까? 퇴근 후 직장 상사를 대신 응대해주는 기술과 제품은 왜 안 만들어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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