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자극적으로 지어보았다. 줄 세우고, 비교하고, 무리 짓기 좋아하는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 갔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인생'까지 운운해봤다. 중소기업을 좋아서 가는 사람이 있을까?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 못 하니까 밀리고 밀리다가 가는 곳이 중소기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나도 대학생 때 중소기업 가면 큰일나는 줄 알았고, 인서울 4년제인 나는 대기업 갈 것 같았고, 그런 대단한 착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취준생이 되었을 때, 출판사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대한민국에서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내는 출판사는 90%가 10인 미만 영업장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중소기업의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출판계일 거다. 민음사, 문학동네, 시공사, 창비 등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내로라하는 대형출판사도 100~150인 규모로 중소기업이다. 그러니 난 출판계로 갈 마음을 굳힌 순간부터 100% 중소기업 행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나는 열심히 취준을 해서 한 작은 교육계 출판사에 입사했다.
유튜버 '이과장' 채널에서 시작되어 왓챠에 서비스된 웹드라마 <좋좋소>. 짱잼이다.
내가 너무 재밌게 봤던 웹드라마 <좋좋소>에 묘사되는 것처럼 '좆소기업'으로 갔으니 내 인생은 망한 걸까?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떠밀리듯 가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난 이미 학생 때부터 중소기업을 갈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대비할 수 있었다. 대기업 가는 건 극소수이다. 대기업 못 갔다고 성공한 인생이 아닌 거면, 90%의 사람들은 실패한 인생이다.
대기업을 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출처: 통계청
기업체 수로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 중소기업이 얼마나 많은지, 대기업은 그에 비해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다. 물론 대기업은 종사자가 많기 때문에, 실제 비율은 저렇게 많이 차이 나진 않지만.
출처: 연합뉴스
취업자 비중을 살펴보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고 있다. 취업의 기본값이 있다면 당연히 중소기업이다. 인서울이니, 취업 잘되는 공대니, 취업 스펙이니 어쩌니 해도 사실 특출날 정도로 매우 실력이 좋거나 운이 좋지 않다면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중소기업을 간다. 이러한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나서 진로계획을 세워야 한다. 티비 프로그램도 그렇고, 신문을 봐도 그렇고 세상이 주목하고 칭찬하고 인정하는 사회초년생들은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거나 전문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출처: MBC <아무튼 출근>
종종 봤었던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2030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쩌면 당연할 걸 수도 있겠다만 '성공한 사람들'을 골라서 보여준다. 5급 행시 합격한 20대 사무관, 대기업 직장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은행원, 개발자, 외국계 회사원 등등.
그들의 엄청난 업무 환경, 높은 연봉, 뛰어난 자기관리 등이 이목을 끌기에 좋으니 방송PD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걸 보는 우리는 '보통의 현실'과 저 프로그램에 나오는 인생과는 괴리가 크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세상의 성공의 기준이 저렇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에 간 내 인생이 망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 안다고 치자. 그래도 분명히 세상의 인정, 연봉, 복지, 업무 환경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건 맞지 않나? 단순히 가치관을 똑바로 세운다고 해서 그게 '정신승리'랑 뭐가 다른가 지적해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접근해보자. '세상의 기준'과 '나만의 기준'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으며, '세상의 정답'을 거부하고, '나만의 길'을 개척해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 해보았다.
중소기업 중에서 고용유지율이 높고, 신용평가등급이 안정적이며, 평균 임금이 높고, 산업의 전망이 좋은 곳을 뽑아 '강소기업'으로 분류한다. 위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세한 정보와 강소기업 목록, 채용정보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중소기업이라고 다 같은 중소기업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직무를 뽑는 강소기업에 찾아 지원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건 시야를 넓힌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분명히 좋은 회사들이 있고, 사람들의 인식이나 미디어에 비쳐지는 모습과 달리 조건이 상당히 매력적인 중소기업들이 많다.
내가 현재 재직하고 있는 출판사를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출판계에서도 분명히 강소기업들이 있지만, 내가 기존에 알던 기업들이 아니었음에도 매출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균 임금이 높으며, 평균 근속기간이 긴 회사가 우리 회사였다. 난 사실 취준 초기에 상당히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갔던 회사는 나름 업계에서 유명한 과학교양서를 내는 곳이었는데, 제시 연봉이 2천 만원(월 실수령액: 1,509,437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사장이 미친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심지어 근무시간도 긴 곳이었는데.. 당연히 입사를 거절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던 와중에 업계 평균 연봉보다 몇 백만 원을 더 주는 곳을 찾았으니, 현재 재직하고 있는 회사였다. 숨겨져 있던 출판계의 강소기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소기업? 오히려 좋아.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처음부터 강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찾아볼 것 같다. 대학 후배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대기업'만' 생각하지 말고, 강소기업도 충분히 메리트 있다고 이야기한다. 애초에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3개 국어를 구사하고, 각종 대외활동과 자격증을 빵빵하게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대기업 입사에 줄줄이 물을 먹고 있는 요즘이니, 냉정하게 꿈 깨라고 말하고도 싶지만,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쓰다 보니 좀 길어져서 차차 보충 내용을 연재해야겠다. 결론부터 먼저 말해본다. 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중소기업 재직 청년 소득세 감면 정책, 청년 희망적금, 청년우대형 청약저축 등 청년 정책들과 개인적인 노력까지 합쳐서 현재 메이저 공기업 수준의 연봉(제도적 금융 지원까지 합쳐서 '연봉'이라고 표현했다)을 받고 있다. 회사의 연봉은 각각 다를 수 있으나 중소기업 취업생이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금융적 지원은 중소기업 사초생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중소기업에 취직한 별볼일 없는 청년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의 위치는 (구태여 따져본다면) 메이저 공기업에서 2군 대기업 신입사원 정도의 수준이다. 나는 겉모습보단 알맹이에 집중하고 싶다. 물론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돈이 기준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돈의 기준'은 매우 몹시 강력하여 다른 모든 기준을 압도한다는 것을. 핵심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하는 일, 보람과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면서 돈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기준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 나를 어떻게 볼지,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평가할지,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이건 오로지 나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주변 사람들이 '명함'만 보고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내 관심 밖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 알맹이는 볼 수 없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도 모두 똑같다. 당신의 인생, 당신이 누군지는 오로지 당신만이 평가할 수 있다. 외부의 소리는 본질적으로 소음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