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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Jan 17. 2023

나의 비정규 알바 일대기1

저는 안 해 본 알바가 없답니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대표님을 처음 뵀을 때의 일이다. 내 이력서를 슥슥 보시더니 "왜 이렇게 알바를 많이 했냐? 혹시 집안이 어렵냐?"라고 물으셨다. 집이 어렵다기보단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최대한 적게 드리려고 많이 했다고 대답했다. 이력서에 알바 이력이 많긴 했는데, 사실 이력서에 기입하지 않은 알바가 훨씬 많다. 많이 축약해서 거였는데. ㅎㅎ


오늘은 내가 20살 이후로 어떤 알바를 해왔는지 돌아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각종 알바를 하면서 느낀점도 같이 적어본다. 꿀알바 추천도 겸사겸사. 자, 바로 시작!




1. 인력사무소 일용근로직(20살)

->정확히는 19살이었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남아도는 시간에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알바비 벌어서 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당시 경기도 안양에서 살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분당 수서역 근처에 있는 인력사무소에 무작정 찾아갔다(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판단이었다. 집 주변에 인력사무소는 널려 있는데, 잘 알지 못하니 멀리까지 찾아갔다). 당연히 꿀보직들은 고인물 아저씨들이 다 가져가고, 남는 일이 있을 때만 우리에게 배정이 떨어졌다. 그래도 힘들게 일해서 스스로 돈 버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처음으로 돈 벌어봤으니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 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번 돈인데 싫다고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 사무소에서 CJ계열의 어느 작은 물류센터에 나를 배정해준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나름 기념비적인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9시부터 6시까지 작업시간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당일에 추가근무가 있으니 8시까지 해야 한다고 팀장이란 사람이 말하길래, 그러려니 했다. 근데 일이 끝나고 일당을 받으니 최저시급x'10(시간)'인 거다. 원래는 2시간의 추가근로시간에 대한 시급은 1.5배가 가산되어 나와야 근로기준법상 맞았다. 그래서 팀장에게 가서 말했더니 "XX씨는 내일부터 못 나오시겠다. 아무도 따지는 사람 없지 않냐? 그냥 가라"고 하는 거다. 그렇게 응당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았다. 시간이 늦어서 택시로 복귀하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난다기보단 20살짜리 일용근로자인 내가 여기서 딱히 뭘 더 할 수 있나, 이런 약간의 무기력감 같은 걸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부당한 사건을 일찍 겪어서 그런건지 그후 알바를 구할 때면 주휴수당, 추가근로수당이 붙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공고에 적시되어 있는지, 별도의 말이 없으면 면접시 물어보며 확인했다.


2. 중고등학교 진로진학 멘토링(20살)

->인생 최대 꿀알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수도권 내에 있는 중고등학교에 대학생 멘토로 방문해서 4교시 동안 일일 진로진학 멘토선생님이 되어 수업을 하는 알바였다.

활동증명서도 발급해주고, 시급도 2015년 당시 거의 2만원이었던 데다가, 픽업도 해주고, 중식까지 교사식당에서 제공해주었다. 알바한다는 느낌보단 애들이랑 놀면서 궁금한 거 알려준다는 느낌이 강했기도 해서 최고의 꿀알바였다.

클라우드를 뒤져보니 활동증명서가 한장 나온다. 멘토링 수업이 끝나고, 대학생 멘토쌤들 한번 더 보겠다고 여고생들이 교문 앞에 진치고 있는 걸 봤을 때는 '인기'란 게 이런거구나 체감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최고의 인기 타임이었던 것 같다. 4개 학교 정도를 방문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만들었던 ppt자료도 찾아보면 어디서 나올 껀데.. 아무튼 역시 교육계열 알바가 최고긴 최고구나 생각이 들었.


3. 대학교에서 돈벌기(20~26살)

->우리학교 대학신문은 정기적으로 학생 기고를 받았는데, 여기 글이 실리면 원고료로 5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3번인가 글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강남에 있던 판자촌 구룡마을을 답사하면서 찍었던 사진과 에세이, 토론식 기고문, 마지막으로 서평. 찾아보면 기사 찍어놓은 사진 있을 건데 이건 못 찾겠다.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경제적인 관념이 좀 투철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이란 돈은 모조리 긁어서 받았다. 학생회 활동(장학금 50만원), 외국인 멘토링(활동비 10만원), 각종 서평대회(상금 10~30만원), 성적장학금(딱 한 번, 100만원인가), 대학도서관 근로장학생(시급 1만원), 독서클럽(활동비 10만원), 우리 대학에 있는 부설 평생교육원 홍보단 활동(시급 1.5만원) 등등. 생각 안 나는 것까지 다 하면 학교에서 거의 매학기마다 수십 만원씩 뜯어냈던 것 같다. 어차피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니는 건 똑같은데, 받아낼 수 있는 건 극한까지 받아내자는 마인드를 탑재한 열혈 학생이었보다, 나란 학생....(그런데 F학점은 8개를 받았다는 놀라운 사실) 사실 이때의 헝그리 정신에 비한다면야 지금 절약하면서 3년 동안 1억 모으는 건 의외로 쉬울지도.


4. 군대 전역하고 카페 알바(23살)

->집 근처 엔젤리너스에서 카페 알바를 했다. 롯데 직영점이라서 근로기준법을 칼같이 지켜주신 건 좋았는데, 직원들 주휴주당 최대한 적게 주려고 알바생을 많이 뽑아서 일주일에 14시간씩 근무표 짜주셨던 사장님이 기억난다(주 15시간 이상 근로해야 주휴수당이 나온다). 혹시 근로시간 좀 늘릴 수는 없냐니까 알바생이 주제 넘는 요구를 한다는 식으로 거절당한 기억이 난다. 근데 웃긴 게 나중에 나한테 대학 어디냐고 물으시곤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냐면서 자기 아들이 고3인데 어쩌고저쩌고 갑자기 친근하게 접근하셔서 좀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우디르급 태세전환;;


내가 직접 그린 라떼 아트 하트 모양!


카페 알바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울 수 있었던 건 손님 접대, 였을 것 같았는데 사실 그건 아니었다. 키가 좀 큰 젊은 남자 알바생이어서 그런가 나한테 시비를 걸거나 무례하게 하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몇 개월 동안. 내 옆에서 같이 페어로 일하던 여자 알바생한테는 클레임을 걸거나 힘들게 하는 손님이 종종 있었는데... 내가 남자여서 이득을 봤던 경험이 아닌가 되돌아보니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서비스 정신은 딱히 배우지 못했다. 차라리 커피머신 다루고, 음료 제조하는 법 배운 게 정말 큰 이득이었다. 라떼아트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알바 일대기의 3분의 1쯤 왔는데 벌써 내용이 너무 길어져버렸다. 할 수 없이 2부로 나눠서 연재해야겠다.


부모님이 돈이 많으셔서 경제적 지원을 풍족하게 해주는 게 아무래도 제일 좋겠지만, 나는 내가 수도 없이 많은 알바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돈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무궁하게 많았고, 실제로 경험을 통해 상당히 성장한 상태에서 사회로 진출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세대출로 1억을 빌리고, 취업할 회사를 선택하고, 청년정책을 활용하고, 철저하게 절약하고, 꼼꼼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된 토대에는 '나의 알바 일대기'가 자리하고 있다. 자, 2부에선 훨씬 다이나믹한 일대기가 펼쳐진다. 기대하시길!


*<1억 프로젝트> 1편부터 차례대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tam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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