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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May 29. 2023

반지하에서 투룸 오피스텔로 이사 가기

2021년 8월, 대학을 막 졸업한 햇병아리 청년은 출판사 취업을 꿈꿨다. 청년은 몇 개월 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느 출판사에 입사하게 되고, 본가인 천안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다. 물론 그 청년이 나다. 모아놓은 돈은 당연히 없었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서울에서 자취방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나는 국민은행의 청년형 전세대출을 이용해서 9천만 원을 빌렸고, 어찌저찌 천만 원을 보태서 가까스로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핫플레이스 망원에서 전세값 1억으로 좋은 집을 구하는 건 택도 없는 일!(당시는 부동산 가격 대폭락 이전이기도 했다). 회사 근처 매물 중 1억짜리 원룸은 '단 하나'밖에 없었고, 그곳이 내가 계약한 반지하 원룸이었다. 회사 입사까지 2주가량 남은 상황이어서 다른 매물이 뜰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애초부터 선택지는 하나였던 것.


창밖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사회초년생에겐 이 모든 시간이 삶의 토대와 생활 습관을 다지는 기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젊을 때 돈을 바짝 모아야 한다는 생각(훗날 3년 안에 1억 모으기 프로젝트로 발전)으로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 있던 그 반지하 원룸을 계약했다. 그로부터 1년 9개월을 습기 차고, 시끄럽고, 춥고, 눅눅하고, 벌레가 우수수 출몰하고, 곰팡이가 쉽게 생기는 반지하 원룸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매일매일 열심히 돈 공부를 해나갔고, 그 동안 배운 지식과 경험의 일부분이 브런치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나는 약 2년간 반지하에 살면서 5만 원을 모았다. 문장으로 쓰면 단 한줄이면 표현이 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은 꽤나 치열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부동산 계약 만료일은 다가왔다. 나는 이번에 전세 1억 8천짜리 투룸 오피스텔로 이사 간다. 말 그대로 감개무량(量)하다. 오늘은 나의 '이사 스토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반지하 원룸에서 사는 건 열악하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열'이라는 단어가 몸으로 체감되어서 저 말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사진 한장을 보여줄 건데, 식사 중이라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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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벽지와 바닥재의 일부분


날 가장 힘들게 한 건 물이 새는 벽지와 곰팡이였다. 공사 전문가가 와서 진단해 보니, 문제의 원인은 너무 얕게 묻은 '온수 배관'이었다. 이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22년 겨울이었는데, 온수 배관이 벽에 너무 가까이 매설되어 있어서 결로가 발생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집주인은 공사를 다시 해서 깊이 매설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짐을 외부로 빼야 하는 데다가, 공사가 끝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내겐 없었다. 모텔에 장기투숙을 하고, 그 비용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살겠다고 했다. 그때까진 저 사진만큼 누수가 심하지 않았고, 약간 물기가 촉촉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물이 심하게 샜고, 장판과 벽지에 설상가상 곰팡이까지 피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환기를 열심히 하고, 제습기를 구매해서 틀어놓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렇게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고, 반년 동안 물이 새는 벽지와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ㅠㅠ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빈도도 많이 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실 이건 기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 새는 벽지와 곰팡이를 빌미 삼아 이사를 빨리 나간다고 하면 안 되나?



기존 세입자가 나가면 복비를 주고 다음 세입자를 또 구해야 하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공실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기에 집주인 입장에선 내가 빨리 이사 가는 게 탐탁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방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에 집주인과의 협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어서 정말 기뻤다. 협상을 타결한 시점은 23년 4월 초였는데, 당시는 서울 집값이 20~30% 대폭락을 하면서 전셋값도 덩달아 저렴해지던 시기였다. 물론 그만큼 전세 사기의 위험성이 증가했지만, '전세보증반환보험', 공시지가 체크, 근저당 및 선순위채권 확인, 토지/건축물 대장 확인, '안심전세 앱' 등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면 사기는 방지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서울 소재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토록 시세가 대폭락하는 사태는 매우 흔치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사를 간다면 남은 계약기간 5개월을 기다리기보단 즉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지금보다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난 이미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이사 가는 집도 1년 전 시세보다 3천만 원 가까이 저렴하게 들어간다). '빨리 이사 가기' 아이디어를 떠올린 내가 스스로 대견(?)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지고야 말았으니, 그건 바로 '전세 대출'이었다.


오피스텔로 이사 간 직후, 환경이 비교도 안 되게 좋아졌다


반지하 원룸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살다가, 투룸 빌라 매물을 보러 다녔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여윳돈을 착실히 모아왔기에 전세금을 두 배 가까이 올려서 매물을 볼 수 있었고, 내가 본 모든 매물은 반지하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좋았다. 이사를 가면 그토록 바라던 수초 어항도 들여놓을 수 있고, 스탠딩 티비로 닌텐도 스위치 게임도 할 수 있고, 친구들도 잔뜩 초대할 수 있다.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맞닥뜨린 '전세 대출 대환 문제'는 만만찮은 복병이었다. 대출을 일으키는 건 이미 해봤기에 별것 아니었지만, 진짜 문제는 '버팀목 전세대출'을 새롭게 받으려면 기존 전세 대출(KB 청년형 전세대출)을 상환하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팀목 대출은 새로 신청하려면 기존 전세 대출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기존 대출을 갚으려면 현금 9천만 원이 필요한데, 그 돈을 갑자기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기존 kb 청년전세 대출은 대출 한도가 1억밖에 안 되고, 변동금리이기에 올해처럼 고금리 체제가 오래 유지되면 이자 부담감이 커진다(나는 고금리 체제가 최소한 반 년 이상은 유지되고, 그 후로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 kb청년대출로 9천만 원을 빌린 나는 금리 4.8%로 36만 6천원을 이자로 내는 중이었다(21년 8월에 처음으로 대출받았을 때는 1.9% 금리에 14만 5천원을 이자로 냈다). 반면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은 1.8% 고정금리이고, 대출한도가 훨씬 높았다. 난 1.4억을 빌렸고, 이자는 21만원이었다. 대출을 더 많이 받으면서 이자 부담은 훨씬 적은 버팀목의 매력이 너무나도 컸다. 기존 kb출을 버팀목 대출로 그대로 대환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 경우에는 추가 대출이 불가능했다. 즉 1억 8천짜리 전세인데 9천만 원밖에 대출을 못 받는 것이다. 따라서 kb전세대출을 갚고, 버팀목 대출로 대출상품을 변경하는 건 이사를 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난 현금 9천만 원을 3주 만에 마련해서 기존 kb전세대출을 상환했다. 이 이야기부터가 진짜 재밌는 스토리이니 기대하시길. 오늘은 여기까지.


* 빠른 시일 내에 다음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https://brunch.co.kr/@tam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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