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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Jun 20. 2023

앎은 앓음, 반지하 탈출기를 되돌아보며 깨닫는 것들

최근 사학자 함석헌 선생님이 남긴 말, "앎은 앓음이다."라는 문장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을 괜히 하나씩 돌아보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은근슬쩍 드러내기 위해 애쓴 건 아닐지 반추하는 시간도 가졌다.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일지언정, 내가 남들보다 힘든 삶을 살아간다는 착각은 절대로 금물이다(지칠대로 지치다 보면, 난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억울한 감정이 가끔 들기도 했다). 반지하 생활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창문도 없는 고시원 같은 더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고투했던 친구들과 지인들의 사례를 충분히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나보다 물리적인 여건이 더 낫더라도 내가 겪은 힘듦보다 더 어려운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적잖게 있을 것이다.


출처: 게티 이미지뱅크


앎은 앓음. 고통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내가 앓은 만큼 깨달음(앎)을 얻는 것은 상당히 맞는 말 같다. 살다 보면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고,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이전 글에서 사초생으로서의 시간을 견디면서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가치는 '나의 마음'이라고 한 적 있다. 무언가를 충분히 겪고, 앓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위로를 준다. 내가 무엇 하나 얻지 못한 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시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탐색하는 방향으로 사고의 전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위기가 기회가 되었던 순간을 상당히 많이 경험하다보니 이제는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짬도 생겼다. 가계약금 100만 원을 날릴 뻔했을 때는 언젠가는 겪어야 했을 임대차 계약의 어려움이니 젋은 나이에 일찍이 겪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당연히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했다), 레버리지 투자를 잘못해서 며칠 만에 150만 원을 날렸을 때는 투자 초기에 바보 같은 실수를 잔뜩 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투자금이 커졌을 때 잘못 손댔다면 150이 아니라 1500만원을 잃었을 것이다). 내 앞에 놓인 현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대처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도 신기한 인생의 법칙이었다.






발상의 전환은 그저 '정신승리'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나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준다. 앎은 앓음이라는 진실은 상상이 아니라 명확히 현실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상당히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실패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반지하 탈출기는 더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옵션이 전혀 없는 집이었기 때문에 가전제품을 완비하는 데에만 200만 원이 들었고, 전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전세금 상환 문제는 나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엄마가 보내준 21만원짜리 스테인리스 후라이팬. 요리에 진심이 되어버릴 것 같다.



쉽지 않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이 침착해졌다. 즐거운 일이 1할, 힘들고 슬픈 일이 9할이라는 인생의 법칙을 몸으로 체득해버린 것일지.. 이렇게 점점 더 차분하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 나를 성장시키는 앓음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나는 충분히 버틸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집들이를 하고 있다. 벌써 10여 명이 넘는 지인들이 우리집에 놀러왔다. 모두들 "ㅇㅇ이 성공했네~" 하면서 칭찬을 많이들 하고 갔다. 나는 성공한 걸까? 성공이란 무엇일까.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소강 상태에 이르자, 뭔가 어안이 벙벙하다. 집이 무척이나 편하고 좋은데, 이상하게 나사 하나가 빠진 기분이 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성장 지향형, 목표 설정형 인간인 건지...


일단은 쾌적해진 보금자리를 좀 더 즐기고 난 후, 1억 프로젝트를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아마 과거처럼 악착같이 절약하고 투자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두근두근. 또 다른 삶이 펼쳐지려고 한다. 과연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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