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1년 9개월 만에 반지하에서 신축급 투룸 오피스텔로 이사 오기까지... 나는 과연 편안함에 이르른 것일까?
내 브런치에는 나의 사회생활 스토리 중 일부분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돌아보면 저토록 치열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 싶다. 반지하생활을 빨리 청산하기 위해 24시간 365일 온몸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삶. 어떻게 하면 좀더 절약할 수 있을지, 부수익을 늘릴 수 있을지, 내가 가진 돈을 최고 효율로 운용할 수 있을지, 좀더 챙길 청년정책은 없는지, 부동산 시장/주식 시장의 추이는 어떠한지... 목록을 늘어놓으려면 끝도 없다. 브런치에도 상당히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실제로 내가 겪어낸 시간과 비교해 본다면 그것들은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내가 현재 처한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나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탐색하며 26살 청년은 천천히 '어른'이 되어갔던 게 아닐런지. 만 19세가 넘은 '법적인 성년'으로서의 어른이 아니라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진짜 어른' 말이다.
스트레스를 풀어줄 그 흔한 취미활동도 없고, 쇼핑을 한다는 등 기분전환도 거의 없고, 생산적인 일과 '돈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면 삶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삶은 어느 정도 등가교환의 법칙이 통용되는 장이기에, 내가 무언가 얻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지난 1년 9개월 간의 시간을 전혀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 중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반대로 '힐링'이나 '욜로' 등의 가치를 추구했더라면 분명히 땅을 치고 후회했으리라 확신이 든다. 나는 눅눅하고 열악한 반지하에 살면서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좋은 집, 많은 돈, 성공적인 삶 등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저 가난하지 않게 살고 싶은 소시민적인 목표를 가질 뿐이라는 생각을. 그러니까 나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꿨었다
집다운 집에서 살기, 가끔은 값이 나가는 식사를 눈치보지 않고 먹기, 내가 하고 싶은 것(친구들 잔뜩 초대하기, 닌텐도 스위치 게임하기, 수초 레이아웃 어항 가꾸기 등)을 하나씩 즐기면서 하기,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그래, 맞다.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툭 떨어져서 알아서 생존해야 했던 26살 청년이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누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삶은 B(birth)와 D(dead) 사이의 C(choice). 언제나 그렇듯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인생에서 내 맘대로 술술 풀리는 일은 거의 없다. 불평, 불만을 쏟아내든 현실을 비관하든 상관없이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세상은 착착착 잘만 돌아간다. '돈공부'와의 치열한 승부는 인생에서 한번쯤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나는 이 일을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챕터 1: '반지하 탈출하기'를 무사히 마친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과연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이 글의 제목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사를 인용했다.
물이 새고, 곰팡이가 슬고, 창문을 열면 퀴퀴한 냄새가 나던 반지하를 무사히 탈출했다. 더이상 이전만큼 돈을 악착스럽게 모을 필요도 없어졌고, 나는 분명히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의 삶의 물리적인 여건이 나아졌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나의 마음'이다. 편안함은 참 독특한 마음 상태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처럼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편안함을 기어코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1년 9개월 간 5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아서 반지하를 탈출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치열한 과정을 묵묵히 견디어내면서 내면의 힘을 성장시켰던 경험이 더 와닿는다. 부조리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불태우며 긍정과 낙관을 잃지 않았던 그 마음이야말로 내가 얻은 진정한 '편안함'이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은 나의 '이사 스토리'를 듣거나 이사 간 쾌적한 집을 보면서 내가 바꾸어나간 환경에 주목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물리적인 환경이나 돈의 액수보단 나만의 편안함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나의 마음을 바라볼 때 훨씬 더 큰 위로를 얻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은 끊임없이 내게 고난을 주고,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을 던져줄 것이다. 어떤 일이 내게 닥칠지, 언제 찾아올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미래의 불행을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운명의 신이 내게 철퇴를 내린다면,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나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리고, 돈을 많이 가지고, 어렵고 힘든 일이 전혀 없을 때 편안함에 이르는 것이라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편안함에 이를 수 없다. 편안함은 완벽한 상태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내가 처한 환경과 조건이 어떠하든 간에,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간에, 내가 무엇을 가졌던 간에 상관없이 나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온몸으로 인생을 밀고나갈 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편안함은 우연히 발견한 보물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 끝에 도착한 보물섬에 더 가까운 것이다.
하나둘 가구가 늘고 있는 앙증맞은 거실
아스라이 떨어지는 노을빛을 즐기면서 가벼운 버번 위스키 하이볼을 즐기는 시간. 깔끔하고 쾌적한 거실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을 쐬다 보면, 마음이 쫑긋 단아해진다. 하지만, 1년 9개월 간 바짝 긴장했던 마음은 아직도 쉬 진정되질 않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번뇌와 고민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뭐, 아무렴 어떤가. 완벽한 편안함은 존재하지 않음을 나는 분명히 안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고민하기보단 편안하게 정주하는 삶, 조화로운 인생을 고민할 때가 왔다.
3년 안에 1억 모으기... 이를 악물고 이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할 필요성이 이제는 많이 옅어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하하하, 고민할 게 있나? 늘 해왔던 대로, 현실을 분명하게 마주보면서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