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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Jan 26. 2023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돈과의 거리를 얼마나 두어야 할까?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오늘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삶에서 내가 진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일단 탄생(내가 나로 태어난 것)부터가 나의 의지가 아니다. 언제, 어떻게,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그 무엇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로 태어난 것은 그저 '주어진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 학과를 고른다거나, 썸을 타는 상대방과 사귈지 말지 고민한다거나,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보는 건 전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하나 골라볼 순 있지만 그 선택을 실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대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상대방은 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막상 도착한 맛집이 정기 휴무날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취향'에도 나의 자유의지가 얼마간 관여하긴 하겠지만 다양한 외부 요인과 타인의 의지가 상당수 섞여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김치와 비빔밥을 좋아하게 되었다던가.


빙빙 돌려 말했는데,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살다 보면 나는 분명히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인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제한되는 느낌이 든다. 특히 돈 문제에서 선택의 제한은 매우 두드러진다. 돈이 있어야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삶(사람답게 사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누구나 좀 더 좋은 집, 좀 더 신선하고 맛있는 식사, 쾌적한 삶을 욕망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에 돈이야말로 나의 자유를 가장 제약하거나 혹은 해방시키는 양가적인 대상이다.


만화 『베르세르크』의 대사. 현실을 직시하고, 주도적으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돈에 초연해져야 할까, 돈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까?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내 관심사는 '돈과 관계 맺는 법'이었다. 이걸 문장으로 풀어본다면 이렇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한다거나, 직업에 대한 자부심, 가족 간의 사랑 등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찾아서 돈에 매몰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다시 말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둥바둥 하지 않고, 지금 나의 삶에 만족하며 돈 말고 다른 추구할 것을 찾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반면 좀 더 좋은 집, 차, 먹거리, 옷 등을 욕망하는 나 자신을 직시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꼼꼼하게 공부해서 돈을 점차 불리는 삶을 추구할 수도 있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나의 삶의 모토를 무엇으로 할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내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골몰했지만, 생각할수록 이 또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절약하고, 투자하고, 저축하고, 특히 자기개발에 게을리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개발이란 '돈을 버는 상태'를 의미할 때가 많은데, 예컨대 취준생이 스펙을 열심히 쌓는다거나, 직장인이 승진시험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모습들이 있다. 물론 악기를 연습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도 있기에 모든 자기개발이 돈과 연관되진 않는다. 다만 관련 자기개발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비대칭 구조를 자주 목도한다.


돈과 관계 맺는 법이 다양하다고 했으면서 돈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모순 아닌가? 그렇다,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돈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는 세상'에서 이상하게 정당화된다. 자본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은 빈부격차, 인플레이션, 젠트리피케이션 등 사회문제가 아니라, 돈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베르세르크』의 가츠의 말을 빌리자면, "돈으로부터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반드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나? 다양한 삶의 형태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내게 맞는 것을 찾아볼 순 없을까? 대학교 3학년 때 이러한 고민을 하다가 '청년 농부'를 진지하게 알아본 적이 있다. 청년농부사관학교에 지원할 요량으로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 이거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돈 문제'가 아닌 게 없더랬다. 교육비와 숙식비야 국비지원이라고 해도 통신비와 교통비 등 기타 생활비용과 품위유지비(?) 등 많은 비용이 개인 부담이다. 


진짜 문제는 교육이 끝나고 내 농장을 창업하거나 작물을 골라서 농사를 시작할 때 드는 수 억원의 '초기 비용'이었다. 이때부터는 주거와 교통 문제도 잇따른다. 시골살이가 도시보다 돈이 적게 든다고 생각한다면... 청년농부들의 유튜브 브이로그 등을 찾아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농촌은 현금 거래 위주의 사회이고, 생활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기에 난방용 액체 천연가스만 충전하더라도 50~80만 원은 우습게 나온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hellopolicy/221577660330 


그래서 영농정착지원금 등 다양한 제도적, 금융적 지원책을 강구하며 스스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유유자적하게 농사 지으면서 젊음을 보내고 싶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데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야 된다. 청년농부들의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살펴보다 보면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돈 걱정, 생계 수단 마련 강구의 연속이라는 걸 금세 체감할 수 있다.




청년농부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조금 길어졌다. 창업을 하든, 취업을 하든, 귀농을 하든, 취업비자를 받아서 해외로 떠나든, 어떤 결정을 하든 모든 청년은 본질적인 돈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 속세를 떠나 절에 귀속되는 등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돈으로부터 도망치는 순간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1년 반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 확실하게 느껴진다. 은행 예적금도 할 줄 아는 사람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실생활 절약도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으며, 투자는 굉장한 공부량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투자는 원금을 잃을 위험도 있고, 전문적인 공부를 요구하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예적금(저축)/절약/제도적, 금융적 지원제도/부동산 공부는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검소한 사람이라도 몸에 걸칠 거적데기 하나,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집)은 필요할 것이 아닌가.


이제 돈에 관한 태도를 묻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은 불가능하다. 돈으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이제 얼만큼 돈에 종속되는 삶을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하고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내 자유시간 중에서 '돈 공부'하는 비중을 얼마큼 가져갈지를 물어야 한다. 돈 공부(절약 방법 강구, 청년 정책 공부, 꼼꼼한 예적금, 청약&시세&국가지원정책 등 부동산 공부, 노후대책 등)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실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루 중 여유 시간의 얼큼을 투입하느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모든 선택은 필연적으로 후회를 동반한다. 쉽게 쉽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고 조언하지만 엄밀히 따져봤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후회가 적은 것은 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부모들도 꽤 많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서는, '후회 없는 선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확신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혹시 관심이 있다면 아래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추천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후회를 하냐 마냐가 아니라 후회를 얼마나 적게 할 수 있느냐이다. 돈 공부를 열심히 해보자는 '세속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훗날 후회를 할 가능성이 100%지만, 적어도 돈 공부를 하지 않는 결정보다는 후회를 적게 할 것이라는 데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ALL-IN 할 수 있다. 도박, 투기 같은 것들을 돈 공부라고 우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매일매일 돈 생각, 돈 공부, 돈 고민 하면서 인생을 살다보면 놀 시간도, 쉴 시간도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현대그룹 창업주 故정주영 회장의 명언


일단 한번 해보시길. 놀고 먹고 연애하고 취미생활 할 시간 충분히 있다. 하루에 1mm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걸로 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망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시간 비중'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내 꿈과 희망을 실현시킬 방도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돈이란 무엇인지 공부해가며, 내 삶의 경제적 토대를 튼튼하게 할 때 진짜 선택의 스펙트럼이 확장된다.

돈 공부 없이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정말 꼭 알고 싶다. 아주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내 판단에선 그건 불가능했다.


나는 부자가 아니라 가난해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 없음을 안다. 살아가려면 숨 쉬는 게 당연하듯 돈 공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3년 안에 1억 모으기 프로젝트의 절반이 곧 다가온다. 끝까지 파이팅해보자.


*<1억 프로젝트> 1편부터 차례대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tam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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