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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Jan 02. 2024

스물아홉,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혹시 나이가..?"라는 질문 속에 담긴 것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아홉수, 이십대의 마지막, 스물아홉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민족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이부터 먼저 묻는다. '동안'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칭찬이고,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일 뿐이지만 나이를 먹는 걸 모든 사람들이 싫어한다. 만나이 통일법이 시행되자 많은 사람들이 1~2살 어려졌다면서 좋아한다. 나잇값을 못 한다느니, 나이보다 성숙하다느니 많은 것들이 나이를 기준으로 말해진다. 왜 이렇게 나이가 중요해진걸까?



나이테를 보니, 이 나무는 나보다 어리다


오늘은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노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나이란 그 사람의 지식, 경험, 통찰력이 농축되어 있는 단단한 띠다. 나무로 비유하자면 '나이테'라고 할 수 있다. 한해 한해 성장하는 만큼 정직하게 기록되는 나이테가 바로 사람의 나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드시 매해 성장할 필요는 없지만, 살아 있는 나무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만약 성장하지 않는다면 뿌리가 너무 얕은 것은 아닌지, 잎이 적어서 광합성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등 다양한 원인을 찾아볼 일이다.




처음 만나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의 나이를 알고 있으면, 대략적으로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생애주기를 따라서 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 A는 몇 살이래?

친구: 29살이래.

나: (29살이니 군대는 다녀왔을 테고,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으면 사회생활 2~3년 차 정도 됐겠구나. 취업이 좀 늦었으면 1~2년 정도 일했을 거고.. 어? 그러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첫 회사인가보다.)

친구: 전문직 시험 준비하고 있대.

나: 어 진짜? (어떤 전문직이지? 5급 행시 같은 시험이면 가급적 빨리 합격하는 게 좋은 텐데. 하기야 CPA 같은 시험도 마찬가지지. 그나마 로스쿨 나와서 변시 준비하는 거면 다른 길도 있으려나..)

친구: CPA 준비하는데, 고민이 많다고 하더라. 회계사 수요가 높아서 시험 합격하면 빅3 회계법인에 취업할 수 있는데, 그것도 나이가 많을수록 어려워진대. 

나: 그렇구나. 그래도 1~2년 안에 합격하면 그렇게 늦은 건 아니니까, 빨리 합격했으면 좋겠네.


단순히 '나이' 정보 하나만으로 다양한 추론이 가능하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애주기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률은 97~98%를 육박한다. 이 말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초->중->고'를 거친다는 의미이며,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도 매우 높기 때문에(거의 65~70%가량 된다), 사실상 대학 교육까지도 받았겠거니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취업->결혼->출산' 등으로 생애주기가 이어진다. 물론 최근에는 비혼, 비출산 등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제때제때 생애주기를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기에, 덩달아 나이의 중요성 또한 높아진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매우 많이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정서상, 몇 살인지에 신경을 덜 쓰면서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결혼시장에서도, 취업시장에서도 나이를 따지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1129131600064


https://news-ade.com/tv-ade/article/124126/


그뿐인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도, 최연소니 최연장자니, 최초니 이런 거 따지기 좋아하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고인 것 같다. 조금만 검색해도 '얼마나 빨리' 성공을 성취했는지 특필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것이 득보다 실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어릴 때 천재로 소문난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서히 빛을 잃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안다. 얼마나 빨리 무엇을 이뤘느냐보단, 성공을 얼마나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도 남들보다 뒤처진 것은 아닌지, 내 나이가 늦은 건 아닌지, 혹은 얼마나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 있는지 신경을 쓰면서 살아왔기에 나이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된다. 하지만 살면서 느끼는 건 '나이'가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나이를 헛먹지만, 누군가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다. 삶의 밀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24시간을 48시간처럼 밀도 높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48시간을 12시간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에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건 아니다. 모든 차이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정량적으로 따지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는 비물질적인 것에 있다. '나이'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점도 분명 사실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얼마나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세상에는 생애주기란 것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몇 살에 얼마를 모았는지, 사회적 위치가 어디인지,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지, 결혼은 했는지... 등등보단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 자신'을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가치와 의미를 느끼는지와 같은 것들을 얼마나 잘 탐색했는지는 고작 '몇 살인지'보다 백배는 더 중요하다. 끊임없이 탐색하고, 도전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신체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녔던 이어령은 그의 책 『젊음의 탄생』에서 "모험심과 상상력 그리고 끝없이 방황하는 탐구의 열정 그 모든 메이비(maybe)의 아름다운 숲"으로 젊음을 정의한다. 인간은 나이가 많아졌을 때 늙는 게 아니라, 삶의 향한 열정과 탐색을 그만둘 때 늙는다.


신체적 나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1이 되는 나이, 그 자체로는 피상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나라면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서 그 사람이 자신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메타인지력(metacognition+力)이 얼마나 높은지를 중점적으로 볼 듯하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통해 얻은 지식, 경험, 통찰력을 동원하여 '나 자신'을 소상히 파악했을 때 나이테는 저절로 두꺼워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 자신을 좀더 잘 알게 되었다는 뜻과 동의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몇 살이세요?'라는 뻔한 질문보단, '무엇에 가치와 의미를 느끼십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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