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좋은 일을 자랑하기는 쉽지만 나쁜 일은 말을 꺼내기 어렵다.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를 털어내고 싶다.
2008년 첫아이를 출산했을 때, 시아버님이 1달 전에 돌아가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도 1달 빨리 출산했다. 나 말고도 모두 지쳤고 정신이 없었다. 첫 손녀를 보러 온 엄마가 떠나면서 시어머니 절대로 혼자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처음에 산후조리 때문인 줄 알고 이미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이야기했다. 사돈끼리 같은 여자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어머니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이제 갓 엄마가 된 초보 엄마는 아직 어렸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갔다가 후회했다. 아이를 보는 방법은 물론, 식습관까지도 다 맞지 않았다. 며느리인 나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약간 친정을 비하하듯이. 이성적인 남편도 나에게 짜증을 부렸다. 자기 엄마보다 내가 만만했나 보다. 그렇게 3일을 계시고 집으로 가셨다. 나는 잡지 않았다. 예정일 보다 빠른 조산으로 산후조리에 공백이 있었는데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먹거리는 내 취향보다 본인 아들을 생각하면서 하셨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공부해서 산모를 챙기면 다 아니라고 혀를 차셨다. 민망함에 피가 묻은 속옷을 내가 빤걸 안 남편이 손빨래를 해줬지만 쓰지 말라는 손목을 움직여서인지 나는 볶음밥만 해도 손목이 시큰거린다. (보기보다 여기저기 연약하다. 병원에서 원래 약하게 타고났다고 진료 후 의사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가시자마자 엄마에게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며 짜증을 부렸다. 엄마가 된 26살까지도 철이 들지 않았었다. 그 해 태어난 나이는 벌써 16살이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남편을 잃은 여자, 첫아이를 낳은 여자의 미미한 감정싸움. 힘든 순간에 타인보다 나 자신이 먼저였으리라.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엄마와 딸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다.
*사진은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