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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크리스마스지만 보통의 하루

by 오연서

우리는 부부와 중고딩 남매가 산다. 크리스마스에 셋만 있다 보니 조용한 평일과 같았다. 기숙사에 남아서 과제를 준비한다는 아이가 있어 가족 회식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올해의 마지막에 하기로 했다.


축제를 준비하던 아이가 다리를 다쳐서 나는 급하게 청주 병원에 다녀온 걸 빼면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보통의 날이었다. 학교 앞 정형외과를 갈지, 나름 검색되는 지웰시티 쪽 병원을 갈지 고민하다가 아이의 의견을 따라 지웰시티로 네비를 찍었다. 병원 진료가 끝나면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아이에게 메뉴를 정하라고 했더니 까르보나라. 나는 왜 까르보나라인지 궁금했다. 아이는 지난밤 까르보나라를 먹는 유튜버? 버츄버? 얘기를 한다. 공부를 하는 건지 먹방을 보는 건지 아이는 자주 유튜브에서 본 메뉴들을 이야기한다. 기숙사에 있다 보니 틈이 나는 시간 보는 유튜브 영상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들의 메뉴 추천은 집에 오는 날 우리 집 메뉴가 된다.


우선 엑스레이에서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인대가 많이 부운 걸로 반깁스를 했다. 혹시 부어서 보지 못한 작은 실금이라도 있을까 생각한다. 발목을 많이 움직이니까 1주일 정도만 하기로 했다. 탈부착식 반고정 깁스와 슬리퍼를 보고 웃는다.

"남자 기숙사 앞에서 2~3개 있던데 나도 이걸 하네."

"여자 기숙사에는?"

"없지 내가 처음인 듯. 팔은 가끔 있는데 다리는ㅋㅋ"

해맑은 여고생이다. 그저 해맑다. 가끔은 이런 순둥이가 세상에 나가 어떨지 걱정이다.

진료를 보고 근처에서 까르보나라를 먹기로 했다. 자주 다니는 동선이 아니다 보니 일단 가까운 곳에 까르보나라가 있으면 오케이다. 아이와 나는 롯데아울렛에 가서 까르보나라와 바질쉬름프를 주문했다. 사진만 보고 자세한 후기를 안 봐서인지 아웃백이나 빕스처럼 쇼핑몰 안에 있어도 독립된 공간을 생각했기에 단독매장이 아닌 푸드코트라 잠시 당황했다. 나온 음식은 맛있었다. 공간만 조금 더 꾸며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했다.


나랑 딸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정형외과에 갔다가 둘만의 외식을 했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겠지 생각했지만 아이는 다시 학교로 갔다. 끝나지 않은 보고서가 있어서 기숙사에 있는 게 좋겠다며 쿨하게 손을 흔들고 학교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평소보다 늦잠을 잤다. 이브라는 핑계로 새벽까지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봤다. 다음 날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본 영화들은 다 조용했다. 그중 '딸에 대하여'는 소설 원작이 있어서 활자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머릿속은 소설 구상에 열심히다. 이제 손으로 옮겨 써야 하지만 상상의 나래에 바쁘다.


종교가 있는 집도 아니다 보니 집은 더 조용하다. 아들도 남편도 나도 모두 각자의 공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가 때가 되면 밥을 먹으며 잠깐씩 얼굴을 본다. 예전 같으면 무조건 외식을 하거나 가까운 곳이라도 나들이를 갔을 텐데 새삼 시간이 흐름을 느낀다.


대신 끼니를 챙기는 일은 나의 몫인데 귀찮지만 거를 수도 없다. 집밥도 괜찮다 한 아들이 먹고 싶어 한 육전을 하고 우리 부부를 위한 부추전, 거기에 대패삼겹을 굽기로 했다. 맥주랑 와인도 한잔씩 마시고 크리스마스 밤이 지나갔다.


보통 돼지고기로 육전을 하다 마땅한 부위가 없어 소고기를 샀는데 아들이 오늘 먹은 육전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나는 돼지가 소를 못 이기지 하면 웃는데..

"자기가 맛있게 만들어서 그렇지." 남편이 한 마디를 거든다. 그래 이렇게 나의 노고를 알아주면 된다. 당연하다고 취부 하는 것이 아닌 애씀을 알아주면 힘들어도 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입으로 오만가지 미운 말을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그냥 사라진다.


다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는지? 누구에게는 축제고 파티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그냥 보통의 하루일 뿐이다. 다치고 먹고 잠깐 웃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는 하루. 특별한 장식도 큰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간 시간 속에 가족의 얼굴과 말 한마디, 따뜻한 기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축제가 아니어도 괜찮은 날, 그저 무사히 지나간 하루를 마음에 접어 두며 올해의 끝을 조금씩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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