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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민 Dec 26. 2022

어쩌다 보니 어른

정체성의 심리학, 박선웅을 읽고

성공을 단념하자 성장하기 시작했고,

비교를 멈추자 구별되기 시작했고,

최고를 포기하자 유일의 길로 나아갔고,

상품임을 포기하자 작품으로 변해갔고,

욕망을 내려놓자 만족이 찾아왔고,

경쟁을 피하자 공존이 가능했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 정체성의 심리학,박선웅


올해만 해도 벌써 27권의 책을 읽었다. 한달에 평균 2-3권의 책을 읽는 듯하다. 주로 책을 읽을 때는 출퇴근 때 짬짬히 읽는다.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먼거리를 갈 때나, 잠들기 전이나, 가끔 시간이 애매하게 남을 때 읽곤한다. 책을 읽고 그대로 덮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곱씹을 때 내것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독후감을 쓰려고 하는데 좀처럼 쓰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생각과 쓸 이야기들은 많은데 솔직히 조금 귀찮은 마음도 있다. 27권 중 나의 마음을 울렸던 구절이 있어서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보고자 한다.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있는데, 한주마다 자기가 읽었던 인상깊은 구절들을 올려 공유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을 통해 정말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영감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올린 구절을 보고 매우 인상깊어 그 책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그 책은 바로 "정체성의 심리학,박선웅 저" 그쯤에 읽었던 책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던 센서티브를 읽은 시기였다. 내가 민감한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알게되고 이 책을 보면서 나에 대한 존중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밑줄 친 구절.


다른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알아야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듯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잘 엮어낼 수 있어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될수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나의 정체성을 찾느라 방황을 많이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나에게 맞는 색이고, 맞는 옷인지,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찾기위해서 심리상담도 해보고, 적성테스트도 해보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쉽게 답은 찾기는 어려웠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발달이론에서 나이별로 해결해야할 발달과업들이 있는데 5단계(12~20세) 청소년기의 과업인 정제성 대 역할혼미에서 훌쩍 성인이 된 후에도 아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정리가 되었다. 이 책에서 현대사회에서는 기존의 발달과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발달과정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한다. 내가 정체성의 혼란을 그토록 오래 겪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체성이라는 문제는 삶의 과정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대두되는 문제이지 어느 한 시기에 완성되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다들 여러 직장 혹은 여러 직업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또 이혼과 재혼이 많아지고 비혼도 하나의 당당한 선택지가 되고 있어 가족의 형태가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문제는 평생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체성이 삶의 과정에 걸쳐서 끊임없이 대두된다는 문제라니, 지금도 늘 고민하고 변하고 있는 내 자신을 더욱 한층더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었다. 나또한 10대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고 20대 때는 정말 각양각색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1년, 1년이 지나갈 때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은 계속 변화하고 바뀌고 있었다. 앞으로도 또 바뀌겠지만.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의 삶을 명사형으로 이해한다. 저 사람은 어디 사는 사람, 저 사람은 어느 직장에 다니는 사람, 저 사람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저 사람은 대학교도 못 간 사람······.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명사로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삶도 하나의 명사로 규정할 수 없다. 삶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또다른 통찰을 얻을 때의 짜릿함이 있고 지적쾌락를 충족시켜주기에 계속해서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기도 하고 또 배우기도하고 나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시간도 가지게 된다. 삶은 명사로 규정할 수 없다. 삶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니... 이런 또 깨달음이 있을까. 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격은 것도 나라는 사람을 명사로 규정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누군가를 명사로 규정하려는 오만을 범하지 말아야지. 브런치에 자기소개를 등록할 때도 그렇게 고심했던 건 그 짧은 문장으로는 나를 다 담을 수 없기에 그저 표면적인 것으로 등록했다. 일하고 운동하고 성향은 민감하고 내향. 하지만 이 단어들로 나를 다 설명하거나 정체성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개개인마다 단어에 대한 기억과 경험과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의 기준대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해도 애써 오해를 푼다거나 다른 행동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이제는 그려려니 하게 되었다. 함부로 판단하는 태도로 인해 그사람의 수준을 알게되었다고 할까.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이 책을 읽으면서 부담이 많이 내려갔다. 늘 그래왔듯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고민하고 행동하고, 또 복기하며 한층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하고 나만의 철학을 찾아가야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한 문장으로 규정하려고 하지 않고, 또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더 나은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겪는 시련이 결국 더 나은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음을 보며, 자신이 겪는 시련 역시 인생이라는 책의 한 장일 뿐이고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자식들에게 인문학 책을 읽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법에 관한 책이 얼마간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인문학 책은 역경을 이겨내는 힘과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중략...

자신의 삶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돈을 많이 벌고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실용서를 읽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 자체가 숭고한 목적이라면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인문학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나도 한때는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이 생겨서 실용서적과 경제, 부에 관련된 책을 엄청 많이 읽었다. 그리고 자기계발 유튜브도 많이 보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있는데, 이 저자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으로 읽고 보고있다.  남들의 방식이 아닌 오로지 나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철학이 있어야 오래 꾸준히 이어가고 흔들림이 없고 나만의 것이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것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살아온 삶과 환경과 경험이 너무나도 다르고, 사는 시대도 다르고, 성격, 성향 모두 다르기에 남이 세워둔 기준에 못맞춘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선택하고 추구하는 것에 대해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는데 고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살면서 인생의 길을 잃을 때 왜 사는지 묻고는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왜’라는 질문은 그리 유용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쓴 시인 김상용의 말처럼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짜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을 하며 살 것이냐’이다. 우리가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왜’라는 물음에 대한 근원적인 답변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삶이 힘겨워 절실하게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누군가가 답을 찾지 못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삶을 멈추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을지라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는, 즉 존재의 방식은 우리 손에 쥐여져 있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떤 주제가 있는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 앞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임을 천명하는 것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지는 우리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손을 꼭 잡고 마음을 담아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을까, 나라는 사람의 뿌리를 더욱 깊숙히 굳게 뿌리내리게 도와주는 책이였다. 아직도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자문하고 있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 중에 변함없는 것들도 있겠지만, 또 변화가능성도 수용하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삶은 명사가 아니라 이야기니까. 이 책에서는 영혼의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내 영혼의 자서전 일부가 되겠다. 삶에서 길을 잃을 때, 꺼내보면 좋을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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