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수민 Dec 01. 2022

가난한 우리 집

돈의 속성-김승호를 읽고

우리 집은 가난했다. 지금도 가난하다. 어렸을 때는 가난한지 잘 모르다가 커가면서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갈 때 각자 방이 있고 침대와 책상, 넓은 거실을 보면 나는 왠지 위축이 되었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세면대가 있는 집,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 거실이 있는 집, 현관이 있는 집에 사는 게 어린 시절의 나의 바람이었다. 지금도 원한다. 기름값을 아끼려고 가스렌지에 물을 담은 큰통을 데워서 화장실로 가져가 그 물을 찬물과 희석해가며 겨우 씻었고, 패딩하나로 겨울 내내 버티고, 13살 때에 엄마는 나에게 다른아이들처럼 비싼거 뭐 사달라는 얘기를 안한다고 일찍 철이 든거 같아 속상하다고 한게 기억이 난다. 그게 왜 속상한 일인지 어린 나는 잘 몰랐다. 나에게 특식은 1년에 몇번 친구들 생일파티 때 따라가서 먹던 햄버거와 돈까스 였다. 사실 집에서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알콜중독자인 아버지는 가족끼리 밥먹을 때면 아직 어린아인 나와 동생 앞에서 반주와 담배를 피며 식사를 했고 대화는 일절 금물이었다. 사실 그때는 소주가 마약인줄 알았다. 아버지는 초록병에 있는 물만 먹으면 더 알수없는 말들과 육두문자 욕설을 하며 큰소리를 치기 마련이었으니까. 식사시간에 말을 하려고하면 밥먹을 땐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으라는 부모님의 말에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식사할땐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식사하라 했는데 왜 우리집은 그렇지 않은지 밥만먹으라고 하는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친구들와 수다를 떨면서 농담으로 우리는 영세민이야 라고 이야기하는걸 들었는데 그게 그 당시에는 무슨말인지 잘 이해는 못했고 가난이라는 단어도 사실 이해를 못했지만 그냥 이렇게 사는게 사는거구나 생각했다. 200원짜리 어묵하나도 살까말까 고민했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그땐 서럽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슬픈 것 같다.


내가 가난을 잘 몰랐던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친할머니,할아버지의 시골생활때문이었던 것 같다. 돈이라는게 사실 시골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것 같았다. 매년 수확하는 쌀로 밥을 지어먹고, 밭에 나는 갖가지 제철채소들로 반찬과 간식을 해먹었고, 매년 계절마다 다르게 열리는 과일나무에 과일을 따서 간식으로 먹고, 키우는 소와 돼지나 토끼로 고기를 먹었다. 장난감도 먹다버린 조개껍질과 주운 돌과 나무잎을 따다가 소꿉놀이를 하며 매년 여름인가 피는 봉숭아꽃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물들기도 했다. 또 여름에는 올챙이와 청개구리를 잡고 흙길에 개미들이 줄지어 따라가는걸 보고 가을엔 고추잠자리를 잡고 노는게 어린 나에게는 그렇게 신선하고 재밌는 일이 없었다. 시골에서는 계절에 따라서 씨뿌리고 심고, 타작하고, 수확하기를 반복했다. 계절마다 피는 꽃과 열매를 보고 계절이 지나가는게 설레기도하고 기다려지기도 했다. 봄에는 딸기와 토마토가, 여름엔 앵두, 가을엔 감과 배 등등.. 그런데 시골도 개발이 되어가는건지 산이 깍이고 공장이 들어서고 논이 없어지고 자급자족의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농사일을 하며 자급자족으로 살았던 우리가족이 이미 오래전 부터 시작되었던 자본주의와 경제시대를 배우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은행이나 경제적 지식에는 무지했던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 사장에게 보증사기를 당하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시골생활에 익숙한 아버지는 도시에 사는것을 두려워 했다고 어머니한테 전해 들었다. 그렇게 화목하지 않고 불행한 환경속에서 자라났던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가 16살 때 돌아가시고 주부생활만 하시던 어머니가 경제적책임을 져야만 했던,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어머니가 할 수있었던 일은 몸쓰는 일 밖에 없었다. 하루에 반나절을 일해도 최저시급을 받는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되신 어머니는 아직 키워야하는 자식이 둘이나 있고 앞으로가 너무 막막해서 자살을 생각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4개월 전 나는 고등학교를 한달 다니고 왜 학교를 다녀야하는지 도저히 납득을 하지 못해 검정고시 하기를 결심하고 자퇴했다. 집에서는 칼부림이 나고 허구한날 부부싸움에 경찰이 왔다갔다하는 가정환경에 무슨 삶의 의미를 찾겠나. 그 다음해 검정고시를 하고 17살에 아주 작은 회사에 들어가 월~토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월 80-90만원을 벌으며 모두 어머니에게 주었고, 어린시절의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4개월만하고 그만두었다. 한창 꿈을 꾸고 내가 뭘해야할지 고민하고 내가 누군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친구들과 고민하며 즐겁게 놀아야할 시기에 돈을 버는 현실에, 벌어야하는 현실에 밀려 살았다는게 서럽고 억울하고 창피했다. 돈이 뭐라고... 그런데도 나는 가난을 몰랐다. 그냥 이렇게 사는게 인생인줄 알았다. 돈을 벌어야할 이유도, 일을 해야할 이유도, 사는 이유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 매우 위태로웠던 것 같다. 십대중후반부터 이십대초반까지 나는 몸에 흉터가 생기게 칼을 긋는 자해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내 안의 알수없는 깊은 우울과 상처를 겨우 감당하며 밤마다 혼자 숨죽여 울며 하루하루를 보낸 나에게 어떤 생각도 마음도 생긴다는건 사치였고, 자본주의, 돈, 일, 공부 이런걸 생각할 여유는 내게 없었구나 싶다. 꿈을 꾼다는게, 하고싶은게 있다는게, 미래가 있다는게 내게는 그게 어떤건지 잘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고, 돈을 벌어야 하기에, 또 경제적지식도 너무나 무지하기에, 이른바 열정페이를 받으며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고 그저 돈을 번다는 일만으로 그렇게 사는줄 알았으니까, 돈을 번다면 어떤 취급을 받아도 되는줄 알았기에 22살이라는 나이에 위에 궤양과 용종이 생기도록, 돈버는자체가 삶이겠거니 그렇게 버티며 살았다. 하루벌어 하루살았다. 그렇게 일하면서 부정한 대우를 받고 매우 나쁜 경험을 하고 나는 당시 청약으로 모아둔 돈 70만원을 가지고 무작정 고향에서 도시로 올라와 울며겨자먹기로 별의별 알바를 하며 근근히 살다가 지금도 최저시급보다는 좀 더 낫지만 그럭저럭 먹고사는 직장에 다니며 살고 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고 버티고 이제 숨 좀 돌리고 보니, 버티는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여유롭게 살고싶다. 아, 꿈을 꾼다는게, 하고싶다는게 있다는게, 미래가 있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면서,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스럽다.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건 얼마되지 않는다. 내가 경제관념이 없다는 걸 안건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축은 커녕 카드값메꾸기 바빠 한달벌어 한달사는 삶을 몇년 하면서 현타가 왔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에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너무나 무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미래계획은 커녕 오늘을 즐겁게 살자 하며 내일을 잊고 놀았더니 벌써 내일모레 서른이라는 나이에 또 충격을 받았다. 직장생활 년수와 나이치고 모아둔 돈도 없고, 힘들게 내 젊음을 바쳐 일하고 번 돈은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허무감이 밀려왔다. 경제관념을 배울 수 없는 가난한 가정환경이 원망스러웠고, 나는 왜 경제관념이 없는지, 어떻게 하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배울수 있는지, 전혀 정보나 지식이 없어 막막하고 좌절스러웠다


본격적으로 공부한건 작년에 경제이해력검증시험을 준비했을 때다. 경영학을 학점은행제로 이수하기 위해 자격증을 추가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마침 나한테 필요한거라 생각해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시험은 매우 어려웠고, 새로운 용어와 이론, 들어보지 못하고 친숙하지 않고 어색한 내용들이 많았다. 공부하면서 느꼈던 건 경제라는 것이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또 중요한 부분이고 이 사회의 축의 한부분인데 따로 관심두고 공부하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게 아쉽다. 이런건 학교교육에 꼭 필요한 것 같다.


자본주의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써 돈이나 경제부분은 필수적으로 알아야하는 기본소양 또는 상식인 것 같다. 책에서는 제목처럼 돈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다. 돈은 인격체 라는 표현에 매우 신선했고 확 와닿았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돈도 그 사람을 싫어할 것이라는, 돈을 터부시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안모인다는 것이라는 것을. 왜 우리집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족은 존재나 마음이나 감정도 터부시 하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우리가족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지 이룰지 방법을 모르고 잘못되었던 것 같다. 참 서툴렀고 모두가 피해자였다. 돈을 대하는 태도들과 습관들에 대해서 많이 나와있는데 그것은 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에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돈을 대하는 태도처럼 나자신과 삶과 사람에게 대한다면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 같다. 그렇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책에서 또 유익한 점은 경제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도 알려준다. 주식,투자,부동산,경제 등 일상생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인식하던 하지 않던 돈을 벌고 사용한다면 모두가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는걸 다시금 일깨워 주는 책이다. 돈을 터부시하고 투자나 주식은 절대 하면 안될 악이라고 세뇌당했던 가치관들, 일해서 돈벌고 모으는 것만이 바른 생활이라고 교육받았던 것들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알게되었다. 정당하게 돈을 버는 건 옳다. 하지만 투자하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돈은 죽은 돈이라고 글쓴이는 표현한다. 주변에 이렇게 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돈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사람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를 접해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운동과 건강에 대한 관심처럼 돈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도 가져야 하는 것 같다. 책을 읽은지 몇일이 좀 지났지만 그새 돈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다시 생각해내는게 쉽지 않고 조금은 낮설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작은 실천을 한 것을 되돌아 보자면 주식을 샀다. 아직은 돈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게 어려워서 많이는 못사고 잃어버려도 될 것 같은 몇만원으로 사보았다. 5년동안 가지고 있을 예정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주식은 파는게 아니라는 것, 대표입장에서 회사를 생각해보라는 것과 잘 알지 못하면 큰 물을 따라가라는 가르침까지 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실천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책에 있는대로 전부다 실천하지는 못하겠지만 몇가지는 의지력의 문제인 것 같다. 이 책의 좋았던 점은 한국인이 써서 한국문화정서에 잘 어울린다고 해야하나, 돈과 관련된 책은 외국인책도 많은데 읽다보면 종종 한국문화정서와는 조금 동 떨어져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런 이질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책 리뷰를 쓰다보니, 다시금 책 내용을 되돌아보고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책을 읽기만 하고 실천을 작심삼일 하고 말았는데, 이렇게 리뷰를 쓰니, 내 삶도 돌아보고, 자기이해와 함께 생각정리도 되는 것 같다. 사사로이 신경쓸게 참 많은 인생이지만 나는 인생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남긴 돈의 속성 책 리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담박한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