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각각 개인에게 부여했다.
내 이름은 수민. 빼어날 수. 옥돌 민.
엄마가 지어주셨다.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셔서 기쁨이라고 지으려 하셨다고 지나가는 말로 들은 것 같은데 유교집안인 친가 덕분에 내 이름은 수민이 되었다. 종교색 짙은 이름은 나도 너무 부담스럽고 사절이다. 엄마 말로는 기도응답받은 이름이라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마음으로 지으셨다고 했다. 아름답다의 아름이 ‘나’라는 뜻이라는데 엄마가 이해하는 아름답다는 예쁘다는 의미겠지. 지난 30년 인생을 엄마의 바람대로 아름답게 살았나 돌아보면 아름다운 것에 비해 깊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이 많이 보여 씁쓸하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이름을 그렇게 지어준 엄마는 작디작은 나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많이 내었다.
신은 각각 개인에게 부여했다.
넌 어떻게 살고 싶어?
넌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어?
네가 바라보는 건 뭐야?
넌 무엇을 소망하니?
넌 무엇을 사랑해?
너는 무엇을 위해서 돈과 시간과
때로는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을 받으면서 까지
네가 사랑하는 너의 사랑이 뭐야?
그게 Your name.
그게 너의 이름이 되어라.
김창옥 토크쇼
오래오래 사랑받고 관심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중.
아름답게 살으라는 의미의 엄마가 부여한 이름, 수민. 정말 그 아름이 ‘나’라는 뜻이라면 ‘나’ 답게 살으라는 의미의 ‘수민’이겠지. 그래서 김창옥 강연을 듣는 중에 저 말이 인상 깊게 들렸다. 그래서 바로 메모해 두었다. 언제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마주해 볼 만한 질문이었다. 엄마가 부여한 삶이 아닌 내가 부여한 내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아름’ 답게가 아닌 ‘나’ 답게.
넌 어떻게 살고 싶어?
난 어떻게 살고 싶을까. 일하고 운동하고 사색하고 휴식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살고 싶다. 사실 나에게 딱 이렇다 할만한 재능을 아직 찾지 못했고 나에게 딱 맞는 일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일하고 운동하고 사색하고 휴식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에서의 바람이 되었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기도 하지만 훗날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진 못해도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듬뿍 사랑을 나누고 싶고, 세상을 바꿀 혁명가는 되지 못해도 내 주변을 나로 인해 행복하고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진 못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넌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어?
그러게, 나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을까. 한 번도 나에게 묻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런 질문을 자기 삶에게 던져보며 살겠나 싶긴 하다. 이런 질문 안 해도 잘 살아가는 삶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늘 불편하다. 단지 내가 원하는 걸 물어보는 질문인데도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답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을까. 선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때로는 강단 있고 냉정하게 존재하고 싶다. 아닌 것에 아니라 용기 있게 말하고, 냉정해야 하는 것에 냉정할 수 있어야 선한 것이 더 선하고 친절한 것이 더 친절할 수 있으며 다정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네가 바라보는 건 뭐야?
내가 바라보는 것, 삶을 사랑하는 걸 바라본다. 모든 고통도 분노도 우울도 아픔도 슬픔의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것을 바라본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없고 불행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슬프면 슬픈 대로 느끼고 화가 나면 화가 난 대로 느꼈다. 좋으면 좋음을 만끽했고 기쁘면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행복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불행하다고 비관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나의 모든 순간순간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격하게 느끼고 안아주었다.
넌 무엇을 소망하니?
어떤 상황에도 평안을 누리는 것, 평점심을 유지하는 것, 감사함을 잃지 않는 것, 사색하는 것을 소망한다. 그리고 베풀 수 있는 삶을 소망한다. 내 입과 눈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나를 넘어 너의 입과 눈이 즐겁기를 소망한다.
넌 무엇을 사랑해?
내 모든 삶의 순간들, 나의 손을 잡고 있는 너와, 나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고 도전의 기회를 누리게 하는 운동,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 세상을 물질적으로 살게 하고 누리게 하는 돈, 가족, 강아지를 사랑해. 그러고 보면 일상의 작은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사실 그것들아 삶을 지탱해주고 있기에 절대 사소하거나 작지는 않은 것 같다. 작은 들풀조차도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데 이것을 고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모든 순간들을 사랑한다.
너는 무엇을 위해서 돈과 시간과
때로는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을 받으면서 까지
네가 사랑하는 너의 사랑이 뭐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는 건 정말 그 사람에게 엄청나게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을 사랑했다. 내가 지금 질문에 답을 한다면 나는 내 삶이 나의 사랑이고 내 사람이 나의 사랑이며, 운동이 내 사랑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사랑 자체라는 걸 알게 되는 질문인 것 같다. 어떤 순간도 거부하지 않고 끌어안는 것이 나의 사랑 방식이다.
이름은 명사로 규정할 수 있지만 삶은 사랑은 명사로 규정할 수 없다. 기쁘고 감격스럽고 슬프고 힘들고 지치더라도 삶의 모든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는 걸 매 순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