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s] KBO 리그 마케팅의 진화
2025년 4월, KBO 리그가 뜨겁다. 개막 시리즈 전 경기 매진이라는 이례적인 기록과 함께, SNS 타임라인은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의 인증샷으로 가득하다. 티켓 예매 전쟁, 팬들의 굿즈 수집 후기, 짧은 중계 영상 클립이 담긴 숏폼 콘텐츠까지—KBO 리그는 지금 2030 세대의 새로운 '놀이문화'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중 입장이 제한되며 리그 전체가 침체했고, 국제 대회 부진까지 겹치며 야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냉담했다. 그랬던 KBO가 어떻게 다시 지금 같은 열기를 되찾았을까?
2024년 KBO 리그 중계권을 포털사이트가 아닌 OTT 플랫폼인 티빙(TVING)이 가져간 순간, 야구를 둘러싼 콘텐츠 소비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간 450억 원 규모의 중계권료와 함께 시작된 이 전환은 단순히 화면이 바뀐 것을 넘어, "재가공 가능한 콘텐츠"라는 새로운 흐름을 열었다.
티빙과 KBO는 계약 당시, 중계 영상의 2차 콘텐츠 제작을 일정 범위 내에서 허용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도입했다. 그 결과 경기 영상 클립을 활용한 숏폼 콘텐츠, 선수별 하이라이트, 팬 리액션 영상 등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을 통해 대량 확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4년 KBO 팬조사에 따르면, "KBO 리그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평균 64.3%였고, 20대 여성은 77.9%로 압도적이었다. 이는 숏폼 영상과 콘텐츠 플랫폼 중심으로 성장한 '신규 팬덤의 유입'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야구장에 처음 발을 들인 팬의 상당수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먼저 선수들의 표정과 몸짓, 감정을 '클립으로' 경험하고, 그 감정선을 실제 현장에서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팬덤이 생겼다면, 그다음은 경험이다. KBO 구단과 리그는 팬의 감정 몰입을 상품과 이벤트로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 자이언츠와 자사의 맥주 브랜드 '크러시'의 협업. 2024년 여름, 크러시의 메인 모델이던 에스파 카리나가 사직구장에서 시구에 나섰고,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50만 회 이상 조회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는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라, 크러시라는 브랜드가 야구 팬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 정교한 마케팅이었다.
또한 두산 베어스와 '망그러진곰' 캐릭터의 협업은 일주일 만에 굿즈 매출 7억 3천만 원을 기록했고, SPC 삼립의 '크보빵'은 3일 만에 100만 봉지를 판매하며 브랜드 콜라보의 성공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는 제품 자체의 매출보다도 "KBO 리그를 통해 접근한 브랜드는 팬들에게 어떤 감정과 기억을 남기는가"에 집중한 전략의 승리였다. 굿즈는 더 이상 수집의 대상이 아니라, 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2025년 현재, 야구를 처음 본다는 팬 중 상당수는 특정 팀보다 "선수 개인"을 먼저 안다. 키움의 김휘집, LG의 문보경, 롯데의 윤동희 같은 선수들은 이제 구단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 주인공이자, 개별 브랜드처럼 기능한다.
이는 구단이 더 이상 팀 단위의 메시지만 전달하지 않고, "선수 개인의 서사와 브랜딩"을 중심에 두는 전략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선수 브이로그, 팬과의 인터뷰, 클럽하우스 라이프 콘텐츠 등은 팬들이 선수에게 감정이입하고, 결국 야구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2030 세대는 더 이상 팀의 전통이나 역사로 팬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와 태도, 눈물과 유쾌함에 반응하고, 그것이 곧 팬이 되는 이유가 된다.
단순히 콘텐츠만 바뀐 게 아니다. 실제로 야구장 안에서의 경험도 완전히 달라졌다. 2024년부터 도입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피치클락 등의 제도 변화는 경기 흐름을 매끄럽게 만들었고, 이는 관중의 체감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졌다.
KBO는 2025년 시즌에도 이같은 변화 기조를 이어가며 경기 외적으로도 관람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푸드트럭 확대, 팬 참여 이벤트, 키즈존 및 여성 휴게 공간 강화 등은 모두 야구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즐길 만한 장소"가 되도록 만든 전략적 요소다. 2024년 팬 조사에서도 제도 변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86.4%에 달했으며, 이는 단순히 경기의 재미뿐 아니라 "야구장을 찾고 싶게 만드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2025년 4월 현재, KBO 리그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여기서는 콘텐츠가 순환되고, 브랜드가 테스트되며, 감정이 교환된다. 야구는 더 이상 '야구팬들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리그는 브랜드와 소비자, 플랫폼과 팬, 선수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복합적 경험의 장이다.
KBO의 부활은 어느 한 주체의 성과가 아니다. OTT 플랫폼의 전략, 구단의 콘텐츠 기획, 기업의 마케팅 협업, 팬들의 자발적 확산,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가능케 한 KBO 리그 차원의 정책과 태도 변화가 맞물려 만들어낸 복합적 성취다. 지금 KBO 리그가 뜨거운 이유는 단지 야구가 재밌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역동적인 마케팅 실험장이자,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콘텐츠 플랫폼 위에서 야구를 보고 있다.
by. Tam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