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자식이 되고 싶다.
엄마랑 사소한 일로 다투고 서먹하게 있던 금요일 오후, 장 보러 갈 건데 다녀오겠냐고 물어서 함께 나갔다.
집 앞에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시장이 있는데 대형마트, 백화점 식료품 코너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구경 가는 걸 좋아한다.
평화로웠다.
아파트에서 수레 비슷한 걸 끌고 나와서 장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도로에서 열리는 거라 도시 냄새와 장에서 나는 온갖 음식 냄새가 섞여있었다.
먹고 싶었던 블루베리와 각종 야채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4시 즈음 간식 겸 이른 저녁으로 간단하게 감바스를 해 먹기로 했다.
감바스, 맛있고 간단하며 분위기 내기 좋은 음식이다. 올리브유 듬뿍에 마늘 듬뿍 넣어 데우고 새우만 몇 마리 넣어서 끓여주면 끝.
아, 간은 소금, 후추 조금이면 된다.
냉동고에 있던 베이글도 데우고 장 봐온 블루베리까지 세팅하고 나니 가볍게 술도 한잔하고 싶어 와인잔을 꺼냈다. 따른 건 복분자주지만 와인잔에 넣으니 그럴싸한 분위기의 식탁이 되었다.
잔 하나 접시 하나 바꿨을 뿐인데 보이는 게 참 다르다.
맛있는 안주에 달달한 술과 함께한 대화는 시작이 좋았다. 엄마가 요즘 그리고 있는 그림 이야기, 운동, 커피 등 평소에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가 마무리는 결국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우리는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불안한 미래가 어쩌면 행복할 수 있었던 지금의 순간을 부정적인 기운으로 물들여버린다.
소주잔에 담긴 술과 와인잔에 담긴 술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가게를 운영하던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이만 먹은 사람처럼 보여진다. 안에 담긴 내용물은 똑같은데 소속되어 있는 곳에 따라 이렇게나 다르다.
이제 뭐가 중요한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내용물을 가꾸는 것인지 좋은 곳에 담겨 잘 보여지는 것인지. 어떤 것이 행복에 더 다가가는 길인지..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화는 결국 다시 약간의 언쟁과 서먹함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다음 주에도 나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따라가 장을 보려고 한다.
좋은 딸이 되고 싶은데 참 어렵다.
(감바스 다 먹고 남은 올리브유에 파스타는 필수다. 면수를 조금씩 나눠 넣어서 잘 유화해 주면 코팅도 기가 막히고 맛도 기가 막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