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시고 싶던 회사 동료에서 남자 친구가 된 그 남자와 나는 어색하게 출근 준비를 같이 했다. 그날부터 우리의 1일이 시작 됐다.
이번 남친은 내가 여태까지 연애, 소개팅으로 만났던 사람들과는 매우 달랐다. 일단 사람이 여유가 있었다.
나는 남친이 다른 남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인, ‘눈치 보느라 본인 능력 이상으로 잘해주기’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여자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여자의 반응에 초 집중을 하는 남자들을 소개팅으로 너무 많이 봐서 나는 데이트 상대의 이런 여유 없는 모습을 보면 설레다가도 피슉 하고 감정이 납작해졌다.
일단 남친은 나에게 <내일 뭐해? 시간 괜찮으면 만날까~?> 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스무고개처럼 이거 할래? 나는 좋은데, 너는 괜찮아? 데리러 갈까? 몇 시까지 갈까? 등등의 대화 없이 그는 나에게 <너가 보고 싶으니, 내일 시간이 되면 데이트를 하자>고 말했다. 내가 준비하는데 몇 분이 걸리는지 물어본 후, “11시 괜찮으면 데리러 갈게, 준비시간 더 필요하면 연락 줘. “라고 말하는 이 남자가 꽤 맘에 들었다. 남자 친구는 물어봐야 할 것들만 물어봤다. 매운 거 잘 먹어? 와 같은 것 말이다.
또 본인은 그냥저냥인 것을 내가 좋다고 했다는 이유로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싫은 건 별로라고,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일 경우에는 자기는 싫지만 내가 좋다면 한번 정도는 해볼 의향은 있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남자는 여자 꼬시느라 온 에너지를 모아 본인 능력 이상으로 맞춰 주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자신을 꼬시려고 혼이 담긴 구라를 치는지도 모르고 ‘어머, 이 남자 자상해 나를 엄청 사랑하나 봐’라고 착각한다. 연애 시작 몇 년 후나 결혼 후 ”예전 하고 달라 오빠 변했어!? “ ”연애 초반이니까 맞춰준 거지 지금이랑 같냐? “ 와 같은 대화가 오가는 안타까운 커플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가장 중요했던 건 남친은 위 사례의 남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나에게 자상했다. 남친은 연애 초반 무리해서 나에게 잘해주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가 만난 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은, 모자라거나 넘침 없이 한결같은 크기로 자상한 것을 보면 굉장히 현명한 사람이다.
남자 친구는 모든 것에 호불호가 명확했다. 자기만의 취향이 데이트 첫날부터 존재했으며, 좋은것 싫은것을 나에게 잘 표현했다. 그는 핸드크림, 손난로 같이 수족냉증인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차, 가방 등등 적재적소에 구비해 두었다. 이런 것들을 챙겨주면서도 부담스러운 멘트나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남친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좁고 붐비는 골목에서도 주차를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자신의 운전실력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차가 주차를 못한다며 구시렁대던 내가 만났던 몇몇 남자들과는 매우 달랐다.
운전을 잘해서 좁고 복잡한 길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주차를 잘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친은 데이트 시 주차가 힘들 것 같으면 미리 로드뷰로 주차장 상태를 찾아봤다. 그래서 항상 데이트 때마다 어떤 변수에도 당황하지 않고 주차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거였다.
남친은 연애에 있어서 꽤나 노력 파였다. 센스도 있는데 노력까지 하니 나로서는 세상에 이만한 남자가 또 없었다. 그와의 데이트는 늘 즐거웠다. 우리는 사귄 이후 매일 같이 만나서 데이트를 했고, 통화를 했다. 데이트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새벽까지 통화를 하다가 잠들었다.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다. 모든 행복한 연애에도 위기가 찾아오는 법. 우리의 경우 그 위기는 나의 친엄마 친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