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시어머니 밥도 그렇게 풀거니?"
저녁 준비를 하다가 문득 결혼 전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날.
남자 친구와 전날 데이트를 하고 늦게 귀가한 게 맘에 안 들었는지, 엄마는 아침부터 계속 잔소리를 했다.
해장을 빨리 하고 싶었기 때문에 라면 물을 올리고 밥을 푸고 있는데, 뒤에서 중얼중얼 잔소리하던 엄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누가 밥을 그렇게 꾹꾹 눌러 담아!!!"
놀라서 뒤를 돌아 엄마를 봤다.
그녀는 씩씩 대며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나중에 시어머니 밥도 그렇게 풀 거야!?"
내가 뭘 들은 거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아침부터 왜 지랄이지?
옆에서 듣고 있던 언니는 지가 먹을 밥을 푸는데 신경 쓰지 말라며 엄마를 말렸다.
엄마에게 많이 먹고 싶으니까 눌러 담는 건데, 시어머니 이야기가 왜 나오냐고 따졌다.
엄마는 여전히 분이 안 풀린다는 듯이 험악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쥔 주걱을 거칠게 빼앗고 밥을 다시 밥솥에 쏟았다.
"결혼한다는 애가 밥을 그렇게 퍼? 다시 퍼! 누가 그렇게 밥을 퍼! 너 나중에 그렇게 밥 푸는 거 시댁 사람들이 보면 뭘 보고 배웠냐고 날 흉볼 거 아니야!"
어이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퍼준 밥을 잘만 먹던 엄마는 나에게 밥도 제대로 못 푸는 딸년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제가 이 나이 먹고 밥 하나를 제대로 못 풀까 봐 그래요?" 엄마는 내 말을 끊으며 소리 질렀다. "너 그렇게 밥 푸면 엄마 욕 먹이는 거야!"
짜증이 났다. 내가 결혼하는 게 맘에 안 든다며 매일 같이 괴롭히더니, 이제는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싶었다. 어제 늦게 들어와서 못마땅한 거면 그냥 말로 할 것이지. 별 희한한 걸로 트집을 잡는 엄마 때문에 숙취가 더 심해지는 듯했다.
엄마의 입은 쉴 줄 몰랐다. "너는 애가 교만해. 어른이 뭘 알려주면 네. 하고 들어야지! 너 나중에 시어머니한테도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할 거니? 너 내가 잘못 가르쳤어. 결혼하기 전에 다시 가르쳐야 해!"
"아 좀 그만해요! 내가 먹을 밥 내가 푸는데 왜 트집이에요. 할 말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을 해요." 계속 내 옆에서 소리 지르는 엄마를 무시하며 밥을 먹었다.
남편에게서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다.
"오빠. 오늘 밥 잘 됐어! 빨리 와!"
전화를 끊고 밥을 푸며 생각한다. 내 시어머니는 식사 준비 할 때 나보고 앉아있으라고 하시는데.
그날 이후 가끔 밥을 풀 때면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짜증이 솟구쳤었다. 결혼하고 보니, 시어머니 밥을 풀 일이 없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시부모님과 2주 가까이 같은 숙소에서 지내던 태국 여행 때, 시어머니는 나에게 주방일을 시키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 뭘 도와드릴까요?” 물어봐도 어머니는 앉아 있으라고만 하셨다. 내가 계속할 일이 없냐고 물어보면 한 두 번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실 뿐이었다.
문득문득 밥을 풀 때마다 또렷이 생각이 나던 엄마의 말은. 결혼 후 나에게 희미해졌다.
시부모님 밥을 푸는것이 나에게는 그리 큰 의미의 행위가 아니다.
시집살이 당해서 억울해서 시부모를 저주 한다던 엄마는 나에게 늘 시부모를 핑계로 잔소리와 화를 내곤 했다.
밥을 마저 푸며 생각한다.
'오만가지를 가지고 날 비난 했었어 엄마는. 한때는 그렇게 피곤한 일상을 살았었지.'
주걱에 붙은 밥알을 물로 털어냈다.
마음에 남았던 그날의 불쾌한 감정들을 밥알 들과 함께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