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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May 10. 2024

내 커플링을 질투하던 엄마

딸을 질투하다니, 한심해.

외출 전 반지를 고르던 중, 남편과 나의 첫 커플링에 시선이 멈췄다.


사귄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서로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커플링을 주기로 했다.   


우리는 까르띠에 트리니티 링을 커플링으로 선택했다.


백화점에서 반지를 샀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반지 쇼핑백을 침대에 놓고 샤워를 하러 갔다.

씻고 나오니, 언니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서는 저 쇼핑백이 뭐냐고 물었다.


"오늘 산거."


언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뭘 샀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그 아래에서 골든 차일드로 자라면서 새끼 나르시시스트가 되어버린 언니에게 커플링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글​을 참고하면 된다.


"커플링 샀어."

"커플링? 남자 친구가 사준 거야? 얼마였어? 대박이다 진짜!! 봐봐, 어디 봐봐!"


호들갑을 떨며 언니는 나에게 반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반지를 보고 언니는 너무 부럽다고 외치다가, 이번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 tangerine 쟤 남자 친구가 까르띠에 사줬데요!"


"뭐?“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동생이 남친에게 선물 받은 반지 가격이 이 정도는 될 거라며 폰으로 내가 산 반지의 가격을 검색해 엄마에게 조잘조잘거리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닥쳤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너 이리 나와봐! 반지를 샀다고? 뭐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커플링이야? 어디 봐봐 가져와바!" 지겹고도 지겨운, 엄마와 언니의 간섭이 또 시작 되었다.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엄마와 언니의 입을 막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내 반지를 본 엄마는 역시나 트집을 잡았다. "그게 무슨 디자인이니? 뭐 다이아가 박힌 것도 아니고, 희한한 걸 샀네?"


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게 클래식하고 이쁜 거야! 얼마였어?"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공홈에 가격 나와있잖아.“ 피곤했다.  


“야 이거 250 넘잖아!” 언니의 말을 들은 엄마는 나를 째려봤다.  


"너 그거 걔가 사줬니? 걔는 왜 그렇게 비싼 걸 사줘? 그걸 사준다고 받니 너는? 부담도 안 돼? 걔 혹시 너랑 결혼하려고 수 쓰는 거 아냐?"


또 다시 시작된 엄마의 지겨운 말들.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건데요. 선물 겸 커플링으로요." 엄마는 내 말을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뭐? 그렇게 비싼 반지를 왜 사줘? 걔가 사준 것도 아니고? 너 미쳤니?"


듣고 있던 언니가 왠일인지 엄마 말에 반박을 했다. "왜? 더 멋있는데! 서로 사줄 수도 있지! 나는 서로 사준게 더 좋아 보이는데 왜 뭐라고 그래요?"

그 말을 듣던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나는 연애하면서 너희 아빠한테 반지 하나를 못 받았는데 그래도 딸년은 남자 친구들이 커플링도 사주고. 좋겠다 아주."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남자 친구에게 선물을 받아 오거나, 남자 친구들과 커플링을 맞출 경우 아래와 같이 그 선물을 비난하고, 트집 잡고, 비아냥 거리며 무시했다.

"그걸 선물이라고 걘 해준 거니?"

"선물 받아서 기분 좋아 죽네 아주 그냥. 선물 사줘서 그 남자 친구가 좋니 그렇게?"

"별로 안 이쁘다 얘. 내가 보기엔 싸구려 같아 보여."


고1 때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줄 빼빼로 선물을 포장하는 나에게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이고~! 아주 열녀 났다. 내가 너 다른 집 아들 빼빼로나 선물해 주라고 키운 줄 알아? 공부나 해! 쪽팔린 줄 알아!"

그날 저녁. 내가 남자친구에게 받은 책상 아래에 숨겨 놓은 70개의 빼빼로로 만든 거대한 하트를 보고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소리쳤다.

"야! 너는 이런 걸 받았으면, 가족들하고 나눠먹고 그래야지 너 혼자 먹으려고 숨겨놓은 거니? 지만 생각하는거봐. 어휴, 조잡스러워! 무식하게 이렇게 빼빼로를 많이 주니 니 남자 친구는? 걔는 공부도 안 한다니?"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질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고 난 이후 나는 엄마가 보인 반응들이 뭔지 알게 되었다.

내 연애에 대해 비아냥 거리고 나쁜 말을 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엄마가 내 연애를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과거 자신의 연애가 생각나 속상해서 못된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라면 오늘과 같은 기억이 떠올랐을때 ‘엄마가 진심은 아닐 거야... 못된 말만 하지만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닐 거야’ 라는 생각을 했을 거다.


하지만 아니다. 엄마는 그냥 마음도 생각도 못돼먹었다.

엄마와 절연한 지금은 내 커플링에 대해 보였던 그녀의 반응이 질투 섞인 비아냥이라는 것을 안다.


반지를 끼며 생각한다.

딸을 질투하다니. 한심해.


집을 나섰다. 엘베를 기다리며 손을 펴 반지를 본다. 함께 커플링을 고르던 ,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행복해하던 연애 초 남편과 나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오빠, 우리 처음 커플링 사던 날 기억나? 나 오늘 그 반지 꼈어!>

<응. 그날 둘 다 그거 맘에 들어해서 바로 샀잖아. 잘 샀어 디자인이 아주 예뻐.>


그날의 기억에 설렘과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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