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캠퍼스는 영원한 모티베이션의 원천
학부 때 가끔 수업을 빼먹는 경우가 있어도, 도서관은 거의 매일 갔다.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건 700번대 컬렉션. 건축, 사진, 예술 등의 '그림 많은' 책들이 있던 섹션이다. 그냥 책 냄새가 좋았고, 뭔가 영화처럼 캔커피 (사실 난 데자와!)를 마시며 통창 옆 큰 책상에서의 여유로운 독서를 흉내(?) 내기도 했다. 그냥 그 자리와, 그 배경, 그 냄새, 나만의 그 시간이 좋았다.
그게 시각적 혹은 지적 허영심이었는지 몰라도,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하는 나의 성향에는 아주 잘 맞는 싱싱함이었다. 정치학 전공생이지만, 건축도 예술도 좋아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캠퍼스는 나에게 그런 공간이었다. 대부분은 도서관이었지만 캠퍼스 곳곳이 쉼의 공간이었다. 가끔 내가 모르는 분야의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발견하고 축제나 거리홍보 등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는.
그러나 학부 졸업과 동시에 진학 첫 석사과정은 이 모든 것들을 잿빛으로, 빨리 탈출해야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매일의 출퇴근을 연구실로, 공부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쏟아지는 논문 읽을거리들, 그리고 조교로서 처리해야 하는 행정일들은 하루에도 백만 번씩 '그만두고 싶다'를 외치게 했다.
캠퍼스의 싱싱함 속에서도 애써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탈출'에 성공했다.
조직생활은 재밌었다. 물론 루틴 한 일이었지만, 그 루틴 속에서도 내 결재라인을 설득해 살짝살짝의 변화 줌으로써 얻은 성취감들이 좋았다. 하지만, 프로젝트와 일들은 '내 것'이기보다는 '회사 것'이었고, one of mine 이 아닌 프로젝트에 나는 one of them이었다.
결국, 자율성, 전문성, '내 것'을 위해 찾아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
새로 돌아온 캠퍼는 모든 게 밝아 보인다. '화석'을 넘어 '원유'가 되어버린 03학번은 캠퍼스에 있다는 자체에 행복하다. 미국은 워낙 나이를 잘 밝히지 않기에... 나보다 나이가 적은 교수도 있고, 학부생들과는 이미... 20살 이상의 차이다.
한국이었으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과 코인차트를 들여다보며 옆자리 동료와 함께 오르는 집값과 자식들 사교육을 논하고 있겠지만, 적당한 유예가 있는 지금 이곳은, 그저 내 공부, 내 삶, 새로운 발견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사실 연구실에는 창문이 없다. 그래서 종종 도서관에 나와 연구를 한다. 그래도, 연구가 풀리지 않거나 답답하면 이렇게 바로 앞에 있는 잔디밭에 앉나 햇볕을 쬐거나 근처 한 바퀴를 휙 걷는다.
학기 중간중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전반적인 활기는 캠퍼스를 가득 채운다.
새 학기의 시작, 새로운 과목과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프로젝트들.
개강이 아무리 부담되고 싫다고는 하지만, 그 묘한 긴장과 뭔가 잘해보겠다는 그 각오가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느낌. 무리 지어 다니는 혈기 왕성한 대학생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와 열정들은 잠깐 루즈해있었던 내 삶의 텐션을 올리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런 새로운 시작과 생경한 긴장은 항상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누가 나에게 "왜 공부해요?"라고 물으면 '공부가 하고 싶어서요'라고도 대답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캠퍼스의 싱싱한 느낌이 좋아서요"
물론 이 공간도 지속적 평가, 실적의 압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 비트가 빠를 때도, 느릴 때도 그 변주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여유로움과 도서관 불을 밝히는 '밤샘'이 공존하는 이곳의 매력은 내가 왜 공부하는가를 너머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욕구, 그리고 이걸 계속 불태워주는 지속적 모티베이션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