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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nt Kim Mar 11. 2024

모르는 게 어때서  

아는 척하는 사람은 박사가 아니라 '도사'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쫄리지만 신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물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노오력'을 하지 않으면... 짐을 싸야한다... 


사실 박사과정은 아는 척과 모르는 척 중간 어딘가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모른다고 하자니, "어휴 공부하는 사람이 이것도 몰라?"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또 아는 척을 하자니 그걸 토대로 내가 아는 것을 넘어선 질문들을 받고, 결국 내 미천한 지식의 바닥이 드러날 것만 같다.


매 학기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특강이 있다. 바로 'imposter syndrom (가면증후군)'에 관한 것이다. 이 특강의 주 내용은 지식생산자로서 자신의 전문성과 권위에 대해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실패하면 정말 여기서 인생 끝나는 건 아닌지 계속 의구심을 가지게 될 때 어떻게 마음을 챙길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가면 증후군에는 두 가지의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내가 이렇게 까지 공부하는데 (이래 봬도 박사과정인데! 엣헴!), 그래도 남들보단 좀 더 알지 않을까 (혹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이고, 다른 하나는 '아니 분명 공부는 하는데 왜 자꾸 모르는 게 나오지? 나 이거 모르면 망하는 거 아냐?'라는 마음. 


알량한 자존심과 두려움의 줄타기. 그래도 공부한 사람인데 무식하다고 무시받기는 싫고, 그렇다고 아는 척을 하자니 모두가 똑똑한 사람이라, 나의 습자지 같이 투명하고 팔랑거리는 지식의 깊이를 알아차릴 것 같아 무섭다. 아는 척하다가 쪽팔림 당하기 전에 그냥 모른다고 해버리면 안 되나?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 좋은 점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부하직원이 안다고 해서(안다고 해야 혼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일을 맡겼는데, 납기일도 못 지키고 결국 모르는 채로 이상한 결과물을 들고 오면 열불이 날 것이고 결국 시간과 에너지 모두를 '낭비'해버리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좀 더 '지혜롭게' 갈 수 있는 길이 있기 마련인데,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나를 좋지 않게 평가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선뜻 '모른다'라고 말하기가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족함을 '고백'하고 '깨달아야' 배울 수 있는게 생기지 않을까? 내가 안다고 생각한 순간 내 능력과 지혜의 샘은 거기서 말라버리는 것은 아닐까? 


간혹 교수님들이 "어떻게 이걸 모르지?"라고 놀라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니 더 가르쳐주고 싶지 않을까? (애들이 너무 모르면 스트레스일 것 같긴 하다...) 내가 만약 교수님의 입장이라면 "어? 교수님! 그거, 이거 이거 아니에요? 그거 저 이미 알고 있어요. 다 알아요" 하면... 가르쳐주거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지 않을까? 사실 내가 대치동 학원에서 강의할 때 진짜 실력있는 친구들은 모르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물어보곤 했다. 


물론 "음, 이 친구 많이 아는 구만. 멋진 친구로군 허허허"라고 교수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훗날 "오우 그 친구는 코스웍 때부터 열심히 잘했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아쉬운 건, 난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 물론 노력하지만, 그랬으면 이미 하버드 어디 할아버지 하고 있겠지. 


전공 내용 관련 질문에서 내가 "나 잘 모르겠는데?"라고 하면 "야, 그것도 몰라?"라고 쏘아붙이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 항상 난 "응, 몰라. 그러니까 공부하는 거 아냐?"라고 대답한다. 


난 진짜 모르니까. 모르니까 공부하는 것이고, 내가 아는 것은 세상에 진짜 일부인 것이고 그것 빼곤 다 진짜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 바로 박사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는 다른 사람이 전문가잖아? 그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척척박사는 척척만 안다. 다 알면? 그건 박사가 아니라 '도사'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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