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한글은 안녕하십니까?
첫 번째 씬.
연구실에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찐 백인 내 동기가 "Hey, what's up?"이라 말한다.
음. 뭐라고 해야 하지? "Not much?" 있던 일을 블라블라 하면서 스몰톡을 이어가야 하나...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 시간에 줄기차게 연습하지 않았나?
그래서 상대방이 질문을 하면 뭔가 꼭 답을 해야 하는 강박 아닌 강박이 생긴다.
어릴 때 미국 한번 와보지 않은 토종으로서의 박사과정 유학생활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어디서 갑자기 누가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 교수님한테 "Hey"라 해도 되나 "Guys?"는 도대체 어느 범위까지 쓸 수 있다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다시 돌아가서, 한국에서 연구실 동기가 들어왔다. 내가 "어? oo이 왔어?" 말하면 으레, "응! 안녕?" 끝.
그렇다. 그냥 별 말 안 해도 된다.
두 번째 씬.
매주 세미나 수업 준비 및 short essay 제출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아, 뭐부터 써야 하지.?' '한글이면 후다다닥 다 쓸 텐데'
다시 또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떠올린다. 똑같다. 연구실에 새벽 1시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도대체 뭘 쓰지?"라고 머리를 쥐어짰다. 한글로 해도 똑같다. 안 떠오른다.
세 번째 씬.
세미나 시간이다. 공부한 것을 토대로 뭔가를 말해야 한다. 일단 눈치를 살피며 다른 애들이 뭔가 말하길 기다려 본다. 자세히는 몰라도, '어? 이거 내가 기억나는 거다. 나도 이거 재밌게 읽었는데, 말해볼까?' 하고 말을 시작하는데... 중간에 어버버 한다. '... that kind of things.... so....' 하고 또 말끝을 흐려버린다.
'에잇, 한글이었음 줄줄줄 얘기하는데'
한글이었어도, 그 세미나 시간에는 미리 할 말을 정리해가지 않으면, 말이 말을 낳고 결국 내가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다가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난다. hit the point는 못하고.
유학온지도 어느새 4년 차다. 한국에서는 대치동에서 강사를 할 정도로 나름 입심(?)을 뽐냈던 사람인데, 뭔가 말할 때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찝찝함, 그리고 한글로 하면 좀 더 명확하고 재밌게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공식적인 자리던 사적인 자리던 뭔가 문화도 다르고 어설프게 농담 치다가 실수할 것 같은 느낌에 부담부담 왕부담이다. 그리고 내가 얘기하는 단어들과 문장 구조는, "김철수 씨는 어제저녁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요?"라고 들릴 정도로 그냥 교과서에서 배운, 정석(?)의 문장구조로 들릴 것 같다.
재밌는 건, 물론 완벽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고 내 발음과 억양 모두가 자연스러우면 좋겠지만, 나를 아는 상대 원어민들은 나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 온 외국인 혹은 오래 산 사람에게도 완벽한 한글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같은 과정에 있던 선배는 나에게 말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하는 일 열심히 해. 시간 지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처음에는 좀 의심스러웠지만, 학부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몇 번 해보니... (학생들은 무슨 죄인가...)
그야말로 닥치니까 좀 더 나아지긴 한다.
아직도 강사로서 85명 앞에 섰던 첫 학기 첫 시간 수업이 잊히지 않는다. 나름 한국에서 강의도 해보고 즐기는 타입인데, 정말 미친 듯한 공포가 다가왔다. 애들이 비웃으면 어떡하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어쩌지 (한 두 명은 나갔다...), 애들이 질문을 했는데 내가 못 들으면 어떡하지... 등등등.
실제로 강의 한 두 번은 망했다 싶을 정도로 학생들의 표정이 매우 안 좋았던 것을 기억한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근데, 예전에 한국에서 강의하던 것을 떠올려볼 때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일단 내 말 자체를 구조화하고 중요한 키워드를 강조하기, 그리고 이유와 사례를 뒤이어 한 문장씩만 쏴주기. 정도였다. 심지어 난 이걸 가르치면서 먹고살았는데!
한글로 바꿔서 해보니, 하하, 나의 영어가 안녕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의 언어 구조와 맥락이 잡히지 않은 채 그냥 말과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잘 풀리지 않을 때 한글로 살짝 구조화를 해보면, 중간중간 문법이나 구조가 망가져도, 내용 전달은 확실하게 된다.
자, 강의나 프레젠테이션, 회의 등등은 좀 딱딱하니, 이런 식으로 준비하면 된다고 치자. 회화는? 요 맨! 하면서 블라블라 자연스럽게 쏟아내고 싶은데, 미국교회라도 다니면서, 동아리라도 다니면서 애들을 많이 만나야 하나?
웃긴 건,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생활할 때, 억지로 내가 어딜 나가서 소셜을 한다고 나의 언어가 달라지진 않는다. 사투리를 조금 배울 수는 있겠다.
이때 개입되는 한 가지의 또 다른 문제.
엉덩이와 머리가 무겁다. 체면의 무게도 실감한다. 이곳 학부생들은 10대다. 내가 일찍 결혼했음...(....)
그렇다고 소셜 모임에 나가기에는, 이곳은 20대 중 후반이면 일찍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고 네트워킹 모임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리고 여긴... 밤에는 일찍 자는... 소도시 a.k.a 섭어번이다.
결국, 한글로 풀어봐도 나의 논리구조는 안녕하지 못하고, 나의 뻣뻣해진 목과 무거운 머리 때문에 그걸 상쇄하려는 노력도 느릿느릿이다. 나름 적극적인 성격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눈치 없이 10대 애들 파티에 껴서 놀 수도, 30대 부부 동반 모임에 싱글로 껴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영어 나이로는 난 4살일 뿐인데 이거 뭐야? 저거 뭐야? 호기심 천국인 천방지축 아이처럼 돌아다녀야 하는데, 이거 뭐 몸과 마음은 곧 마흔이니 당연히 갑갑하지 않을까.
나의 영어실력은 방 안에만 처박혀 있지 않는 한, 나도 모르는 채로 조금씩은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사람들을 만나고, 수업 듣고, 수업하고, 발표를 하니까. 단, 얼마나 조리 있게 전달할지는 영어의 문제이기보다는 말하고 쓸 때 구조화의 문제, 친근한 표현들은 '얼마나 가벼운 엉덩이를 가지느냐'에 있지 않을까.
한글이 안녕해야, 영어도 안녕하고, 내 멘털이 좀 더 싱싱해야 영어도 싱싱해지지 않을까.
+ 미국 애들도 레스토랑 메뉴 보면서 헷갈려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솔티 하지만 부드러운 식감의 우니를 곁들인 카르파쵸"라고 쓰인 한글, 바로 이해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