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는 간소한 생활
미국, 특히 남부 학교에 다니면 정말 편한 것이 있다.
아무도 서로의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애써 칭찬할 때나 (가장 흔한 칭찬이 "nice shirt!", 물론 겉치레 인사) 뭘 좋게 지적해줘야 하나 찾아보는 정도.
회사원이던 시절, 갑갑한 정장에 내 몸을 욱여넣고 온냉탕을 오가는 지옥철에 몸을 싣던 생각이 난다. 보수적인 회사라 타이만 하지 않았을 뿐 풀 정장에 구두를 뚜걱거리며 다니던 시기에 육수를 줄줄 뿜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학생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지금 나는 180도 다른 옷차림이다. 여름에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봄가을에는 운동복 바지에 스웻셔츠 끝. 이거 하나로도 복지력이 만배 상승이다.
한국이었으면 대학원 박사생이 반바지 입고 다닌다고 한소리 들었을 수도 (물론... 나는 석사 때도 반바지를 입고 교수님 연구실에서 조교를 했다).
흥미로운 건, 교수님들도 학교 컬러인 '오렌지'색 옷을 착용하는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정말 반바지에서부터 하와이안 셔츠까지 (내 지도교수님 트레이드마크) 자유롭게 입고 다닌다는 것.
하지만 예외는 있다. 수업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래도 긴 바지에 셔츠 혹은 블레이저 정도는 입고 들어간다.
물론 나도 강의를 할 때는 나름 셔츠에 블레이저를 즐겨 입고, 과 전체모임에서도 나름 '보수적' (이라 쓰고 비즈니스 캐주얼이라 읽는다)으로 입는다. 물론 최근에는 이것도 그냥 '귀찮아서' 츄리닝 입고 교수님들과 함께 모임을 한다.
한국에서는 패션에 큰 관심도 없었고 그냥 깔끔하게만 입고 다녀야지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후줄근하게 보일까 때때로 유행하는 컬러나 스타일을 찾아보기도 하고, 결혼식이나 오랜만의 동기모임 등등에는 그래도 조금씩은 신경 써서 참석했던 것 같다.
가끔 그냥 기분 전환으로 쇼트팬츠가 아닌 '긴바지'를 입고 가면 "오 너 오늘 강의 있어?"라는 반응, 그리고 이게 단체 모임에서 신경쓰는 듯 한게 몇 번 노출되면 어느새 '패션왕'이 되어 버린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관리를 잘하나 봐"라고 어느 정도 한국 문화를 아는 친구는 얘기한다.
일 년에 두어 번 눈이 올까 말까 한 날씨 덕에 코트는 입을 일이 없다. 뭐, 날씨 자체로는 입을 만 하긴 한데, 겨울에도 캠퍼스에 코트를 입은 사람들은 눈 씻고 찾기가 어렵다. 입는 순간 시선 마그넷. 한국을 떠나온 지 4년째, 그래도 품위가 있지 맨날 잠바 떼기만 입는 것도 늙은 사람이 젊은 척하려는 느낌인 것 같아 얼마 전 할인하는 코트를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이틀 후 바로 삭제. 그렇다. 2월 말, 3월 초. 벌써 낮에는 24도를 육박하는 날씨다.
울소재의 니트? 사치다. 입을 일도 별로 없고, 유학생활에 드라이클리닝은 사치고 손세탁도 귀찮다. 그냥 스웻셔츠에 점퍼가 최고.
패셔니스타가 모여있는 뉴욕도 아니고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동북부도 아니다 보니 나의 옷장은 어느새 편한 옷들로만 가득하다. 한국이면 체면 때문에 잘 입지 못할 반바지도 시원하게 맘껏 입을 수 있다.
아마 이런 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자, '뭘 입지?' '어떻게 보일까?'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