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한 rejection이라도 마음은 아프고, 또 일은 해야 하고
조금 늦게 박사과정을 하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불확실성(uncertainty)에 그래도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연구를 저널에 보내는 건 일 년에 몇 번 정도뿐인데, 최근 나는 잡마켓 (각 학교 교수직 지원)에 나와있는데, 계속되는 거절을 마주하자니 생각보다 마음이 좋지 않다.
연구자들은 (대부분) 퇴직 전까지 계속 연구를 하며 저널에 연구를 싣으려 노력하는데, 여기에 이어지는 R&R(Revise and Resubmit, 수정 후 제출)과 Rejection (거절) 그리고 10% 미만의 Acceptance (게재 승인!)는 tenured full professor (종신직 정교수) 또한 여전히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연구 + 멘털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내가 있는 과는 그래도 분위기가 좋은 편이라 주간 미팅 때마다 서로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나누기도 하는데, 저널 투고는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고, 거절을 받은 경우는, 서로 위로하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논문을 만들 수 있을지 나중에 따로 세션을 마련해 돕기도 한다.
내 연구를 저널에 투고(제출) 하면, 2-3개월 정도 3명의 리뷰어가 내 연구를 리뷰하고, Associate Editor 부편집자가 이들의 의견을 취합해 이 연구가 계속 수정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 (R&R), 그만큼의 가치가 덜 한지(Reject)를 결정한다. 박사과정에서 듣는 academic writing seminar에서는 리뷰어의 입장에서, 에디터의 입장에서 연구를 리뷰해보기도 하고, decision letter (최종결과)를 쓰는 훈련을 통해 어떻게 하면 건설적이고 친절한 리뷰를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사실, 이 업계에는 망치를 들고 못을 찾아다니는 분들이 종종 있기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재밌는 건, 저자의 입장에서 리뷰를 기다리는 시간도 초조하지만 (입사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고 그다음 결과를 기다릴 때의 느낌과 조금은 비슷하다), 막상 결과 레터가 이메일로 온 순간 여기서 연구자들 마다 나름의 리츄얼이 있다. 어떤 사람은, 메일을 열어 거절인지 통과인지만 확인하고, 상세한 리뷰 (리뷰만, a.k.a 가슴을 후벼 파는 말, 보통 10장이 넘는다...)는 나중에 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바로 열어 바로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에 따라 그 결과를 하루 이틀 동안 즐기는(?) 사람도 있고, 바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아카데믹 프로페셔널에서는 반복되는 거절들을 어떻게 자기만의 리츄얼로 멘털을 잘 관리할지가 항상 화두고,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내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잡마켓, 그야말로 정성평가+정량평가로 아주 냉철하게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PD 시험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끊임없는 지원과 거절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생각보다 그렇진 않은가 보다. 그때는 나름대로의 초심자로서, '기여'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나름대로 '배우겠다'는 의지를 버무려 피력하는 것이기에, 그나마 좀 괜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름대로 프로페셔널 업계에 들어왔고, 나의 필요와 쓰임, 그리고 내 자식(?)과 같은 연구들을 들고 '마켓'에 나왔을 때 마주하는 거절들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하고 최종 결과를 기다릴 때, 그리고 그 답이 거절일 때 사실 좀 멘붕이 오기도 했다.
마음을 추슬러보니, 한편으로는 나이가 조금 들어서 거절을 여러 번 마주하고, 내가 가진 장점도 있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단순히 나의 부족이 아니라 서로의 상생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한 경험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평가는 끝이 없고, 계속된다는 것, 그 평가의 결과는 계속 변화한다는 것 (사실 이건 내 연구주제다...)을 느끼게 되면서 어느 정도 거절이 익숙해지기도 한다.
프로페셔널 업계에서는 거절을 상수로 두고, 어떻게 그 실패를 개선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것을 위해 대화한다. '고도의 행위'를 운운할 때에는 고도의 멘털관리와 대화 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수많은 거절과 괜찮음을 통해서 쌓아와야 하진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업계에 있는 것이 항상 마음 편한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늦게라도 이 영역에서 활동(?) 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