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를 파악하고, just do it.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유학에 대한 희망과 걱정을 나눈 이야기들이 있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나와 같은(?) 30-40대 분들을 위해 남겨본다.
당신이 꿈꾸는 30대, 40대의 삶은 무엇인가?
30대에는 대기업 직장에서 어떤 직위를 가지고 있으며, 결혼과 자녀의 유무, 그리고 사는 지역과 아파트 단지, 혹 아이가 있다면 학군 등등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이래야 한다는' 막연한 규범이 있다. 그리고 40대에는 아이들도 적당히 성장해 있고, 나의 커리어도 나름대로 안정궤도에 있으며, 남들이 좋다 하는 자동차나 백, 스포츠용품 등을 구매하고 은퇴 전 노후를 위한 재테크에 더 힘을 쓰기도 한다.
당신은 이런 사회적인 규범과 무언의 '이래야 한다'는 것에 벗어나는 것에 대해 불편한가, 상관없는가, 상관있더라도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가?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보고 유학이나 공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건네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은 "왜 유학/공부를 하고 싶나?" "혹시 지금 하는 게 싫고 불편해서 인가, 혹은 공부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인가?"이다. 이 질문의 의도에는 대학원/박사/유학 과정이 회사나 한국에서 일하는 환경보다 좋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공부 자체는 나와의 싸움이라 매우 고된 것을 알았으면 하는 것이 담겨있다. 어떤 것이 싫어서 다른 것을 하고 싶으면, 다른 선택지에서 또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다시 올라오기 마련이기에.
두 번째,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가? 굳이 내 예전 학부 전공과 똑같지 않아도 좋다. 어느 정도 연관성이나 현재 재 직업과 연관된 스토리 텔링과 연구주제가 있으면 충분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 왜 그 공부를 하고 싶은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나?
세 번째, 만약 생각했던 연구방향이 박사과정 혹은 유학생활에서 달라졌을 때 괜찮은가? 졸업 이후에 진로는 어떤가? 안정적인 수입 혹은 직업 안정성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우리는 '시간'이라는 큰 투자를 하는 것이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 모두가 나의 서포터이자 나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나는 만 35세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짧은 히스토리를 얘기하자면, 학부, 첫 번째 석사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박사과정도 정치학으로 가려했다. 하지만, 군대 문제로 3년간 장교로 복무하고, 취업 전 대치동 학원에서 잠깐 일을 하고, 대기업 인사팀에 들어갔다. 이때까지가 딱 서른.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었다. 채 1년도 다니지 못하고. 유학을 결심하고 앞뒤 돌아보지 않았다. 회사 생활은 나에게 잘 맞았지만, 또 다른 불안함이 있었다. 회사에서의 업적이 '내 것'이 아니었고, 내가 오랜 기간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더라도, 그 기업을 떠나는 순간 내 경력만 있을 뿐 그 소유는 그 기업에 있는 거니까. 난 오랜 기간 대기업들에서 근무하신 아버지를 보며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난 그렇게 똑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걸 그때그때 했던 것 같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별로 커리어 관리를 하지 않았다. 한 조직에 적어도 2-3년은 있으면 좋은데 (이것도 그냥 남의 시선...). 근데, 이건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아무런 제약을 주지 않는다. 그냥 박사과정에서의 노력과 성과가 중요할 뿐, 나름 '리셋'을 할 수 있으며, 내가 실패라 생각했던 과거의 경험도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부분이 박사과정에서 연구 모티베이션에 큰 도움을 준다.
그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서의 석사과정은 33세에 시작했고. 사실 생각해 보면 별로 늦은 것도 아니다. 일단 미국은 박사과정 채용이나 박사학위 취득 후 취업할 때에도 나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 나이는 '한국'의 기준과 '내' 기준에서만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의 고민 지점이다.
위 질문들에 대한 내 대답은
1) 나는 내 윗사람 때문에, 클라이언트 때문에 이런 핑계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잘 되던 못되던 나의 온전한 책임인 게 좋다. 그리고 난 내 거 하는 게 좋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교수라는 직업은 매우 매력적이다.
2) 나의 연구주제는 석사과정/입학 당시의 관심사와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고, 아이러니한 것은 정치학 때 연구했던 주제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움이 되고 끼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잡마켓에 나와 있는 요즘은, 어린 나이에 춤연습하던 엔터계에서의 나의 실패 경험을 십분 활용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 이것도 지금 내가 하는 공부/전공의 큰 이유다. 아무리 내가 곤조 있게 내 연구를 이어가더라도 지도교수님의 지도나 퍼블리케이션 과정에서 리뷰어들의 '일해라 절해라' (사실 매우 큰 도움이 된다.)가 나의 방향성을 바꾸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괜찮다. 이건 "컨트롤하지 않는 게 컨트롤이다"라는 내 성격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졸업 이후를 얘기하는 것은, 돈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직업이 '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의외로 3D 직업에 몇몇 전공을 제외하고는 박봉이다. 따라서, 시작 전에 적당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내가 전공 분야를 바꿔서 좀 더 금전적 안정을 추구해도 괜찮은 건지, 그렇지 않다면, 금전적인 압박이 생길 때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참고로 나는 아직 미혼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마음을 편하게 먹었을 수도 있다. 참고로 결혼을 했을 경우 가족과 함께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쪽이 아이를 키우거나 혹은 와서 '그냥'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조율하는 것이 대부분 한국에서의 직업을 그만두고 오는 것이라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공은 박사과정이면 stipend라고 해서 정말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펀딩을 주긴 한다. 본인이 추가로 노력해서 펀딩을 유치한다면 세 가족이 지내기에는 불가능하지는 않다.
공부/유학을 생각하는 30-40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한다. 한국에서 혼자만 고민하는 것보다는 생각보다 예상하지 못한 좋은 기회들과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다. 석사과정이 장학금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도 석사과정이 학교일을 하는 경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박사과정은 물론이다. 아이들을 키우기도 생각보다 좋다.
지금 이 브런치북에 있는 테마가 '곧 마흔의 뻔뻔한 박사유학' 이기에, 나이가 들어 박사/유학 과정에 들어오는 것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댓글로 물어보길 바란다. 물어보는 것에서,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 아니겠는가? 할 수 있다. 그냥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