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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nt Kim Sep 21. 2024

내 이름 말고 프로페서 킴이라 불러!

호칭 뒤로 슬쩍 숨어보다. 

사장님, 대표님, 이모님. 동방예의지국 코리아에서 잘 모르는 타인을 나름의 적당한 예의를 갖춰 부르는 호칭이다. 직장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꼭 ~프로, ~님, ~과장님 등의 호칭으로 타인을 부르지, 길동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존칭은 말 뒤에 sir, maam 정도만 붙이는 미국에서는 사실 내 지도교수한테도 야 팀! 이렇게 부르기도 하며, 대부분 소개 이후에는 first name (=길동)을 주로 부른다. Last name (=홍)을 부르는 경우는 공식적인 자리가 대부분이며, 이때는 Mr/Ms/Dr/Prof/Sr가 따라온다. 


3학기 동안 난 Professor였다. 박사과정 중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 맨 첫 학기에 고민하는 건 '내 학생들한테 나를 뭐라고 부르게 할 것인가'이다. 한국이면 알아서 '~교수님' 혹은 '~강사님' 등 일단 '님'이 들어가지만 여긴 뭐 이름을 부르라 하면 '야 길동아!'라고 학생들이 부르니. 


많은 강사/교수진들은 쿨하게 first name을 부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강사-학생의 power distance를 줄이고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고, 사실 교수님들은 호칭정리를 하지 않아도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으니 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도 교수님들처럼 "야 길동아!"라고 학생들에게 호칭을 '허'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비극이 시작된다. 안 그래도 박사과정 '학생'인 것을 아는 애들은 '굳이' 친한 척을 하면서 과제 연장을 요구하기도 하고, 수업 태도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freshman (1학년)은... 18세다. 틴에이져. 질풍노도.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부탁을 갑자기 안 들어준다? 어떻게 하겠는가? 강의평가에 아주 쓴맛을 보여주게 된다. 



내가 가르친 과목은 85명의 신입생이 듣는 경영대 필수과목이고, 다행히도 같은 과목의 다른 분반 강사들이 있다. 격주에 한 번 회의를 하는데, 학기 시작 전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개인의 취향이지만, 되도록이면 first name을 부르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어. 애들이 아직 틴에이져라 맞먹으려고 하더라. 박사학위 있는 강사들이나 교수 (대부분 조교수)들은 Dr. 를, 나머지는 professor로 통일하는 게 좋겠어." 


3-4학년 과목은 학생들이 학교/수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기 때문에 알아서 눈치껏 행동해서 호칭이 별 상관이 없다. 강의 평가도 나름 너그럽다. 문제는 틴에이져, 신입생들. 


다른 강사/교수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오그라들고 어색하지만, please call me Professor Kim이라고 첫 시간에 말했다. 


첫 학기 때는 호칭만 그랬을 뿐, 학생들과 친하게 농담도 하고, 과제 기한 연장도 몇 번 해주고 초코파이도 뿌리고 아주 쿨하고 나이스한 강사인 '척' 했다. 그랬더니, 학기 말에 떼쓰는 학생부터 자꾸 가족들을 (말로) 죽이며 수업을 빼먹고는 면제해 달라고 조르는 학생까지 가관이었다. 몇 번 안 들어주자 강의평가에... 매우 왜곡된 말로... "Mr. Kim (김 씨!!!)은 학생들하고 소통도 안 하고 불친절하며, 영어도 못하는 것 같다"라고 싸질러 놓았다. 


아 이런 거였군. 


두 번째 학기부터는, please call me professor Kim, no Mr. Kim. No extensions. 아주 그냥 '교수'라는 무거운 호칭 뒤에 나의 나이스함을 꽁꽁 숨겼다. 그러니 편해졌다. 애들이 징징거리지 않는다. 아주 살짝 친근해지려 초코파이를 뿌렸더니 애들이 감동한다. 강의 평가도 칭찬 일색. 


자세도 최대한 거만하게!!!


그렇다. 물론 강의 방침과 태도도 있지만, 호칭이 주는 중압감과 그 뒤에 살짝 숨어있는 나의 불안/나약함이 공존하며 묘한 기분을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짜 사장님 회장님 교수님 선생님이 되려 하는 것인가. 


물론, 내가 '진짜' 교수가 되면 애들이 뭐라 부르든 말든 별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굳이 내가 뭐라 부르라고 하지 않아도 나는 '진짜' 네가.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의 미성숙함이 그 '무거운' '호칭'을 필요로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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