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나 저기나 거짓말과 꼼수가 난무한 세상.
내가 있는 전공의 박사과정은 졸업 전 3번 (3학기) 강사가 되어 솔로강의를 하도록 요구한다.
보통 3-4학년 30-50명 내외의 강의 배정이 대부분인데, 이럴 수가, 나는 졸지에 85명 새내기 (여기는 18세...)들의 학부(college) 필수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가을 학기 봄학기 모두 티칭을 하지만, 신입생들의 첫 학기인 가을학기는 첫 수업시간은 묘한 긴장과 기대, 그리고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시선과 함께 시작한다.
사실 첫 학기 강의는 매 시간 "내가 못 알아듣는 질문 하면 어떡하지....?" 등등 공포의 연속이었고 여러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한 가지 아주 가볍게, 그리고 정확하게 학생들을 다루는 법을 파악한건 바로 "결석"과 관련한 것.
학기 초반에는 가족들이 그렇게 다들 건강하고 잘 지내나 보다. 결석이나 지각 등을 얘기하는 메일도 없다. (사실 나는 강의 첫 시간에 "나 결석했을 때 놓친 것 없어요?"라고 질문하지 말라고 한다. 그건 학생 개인의 책임이니.
여하튼, 풋볼시즌이 한창이고 시험이 다가올 때쯤부터 아이들이 하나 둘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아픈 건 죄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묻따 (묻고 따지지도 않는) 자유 재량의 결석 2회를 허용한다. 아플 때 쓰라고. 문제는 이걸 홀랑 써버린 애들, 그리고 아픈 건 제외해도 되지 않냐고 따지는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은 그래도 귀엽다.
첫 학기 때 이런 메일을 받았다.
"저 지금 다른 주에 있는 고향에 내려와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는데, 병세가 안 좋아서 마지막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아요. 수업에 빠져야 할 것 같은데, 결석처리가 되는 건가요?"
또 어떤 메일은
"허리케인 때문에 고향 집 가족들이 피해를 봤어요. 가서 일을 도와드려야 해요..."
"부모 같은 할머니가 어제 돌아가셔서 제가 가족들이랑 함께 있어야 해요."
첫 학기 때는
"저런, 너무 힘들겠다. 일단 가족들을 챙기는 게 먼저니, 그쪽 상황을 수습하고 알려주렴." 그리고 그 이후에 또 "너 괜찮니? 내가 도울 게 있음 얘기해"라고 답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너의 결석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번거롭더라도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해. 이렇게 할 수 있지?"라고 안내한다. 가족의 사망이나 기타 위급상황들은 적절한 서류를 준비한다면 dean에게 승인을 받고 결석으로 카운트되지 지 않는다.
결과는? 이제껏 아. 무. 도. 결석 제외를 받기 위해 리포트를 하지 않았다. 내가 했던 팔로우업 질문들에 대해서도 당. 연. 히. 피드백이 없다.
그냥 학교 가기 싫어서 보낸 것이기에.
이건 만국의 공통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처음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특히 다른 문화배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10대들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구분하는 게 챌린지다.
그래서 그 이후로 매 학기 첫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얘기한다. "제발 너네 가족을 죽이지 마라" 긴급하거나, 사유가 있다면 서로 얘기해서 접점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한다.
거짓말을 해서 그 당시의 상황을 모면하고, 그걸 넌지시 봐주는 것부터가 잘못된 관행과 인지 오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렵고 때로는 귀찮은 상황에 대해서 공유하는 '안전지대'를 좀 만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은 패턴을 양산하는 것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가르치면서 많이 배운다. 그래서 더 즐겁고 항상 기대가 된다 (어떤 기상천외한 일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할지...). 그게 또 유학하면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맛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