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좋은 이유는 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주부에게 끼니는 일상이며, 만성적인 질환과도 같은 것이다. 싫다고 내팽개칠 수 없는 일이다.
남편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인데 평상시에는 떨어져 있으니 늦은 밤에 통화를 하고, 만났을 때는 비행기나 차 안에서 대화를 많이 한다. 특히, 인도 내에서는 차량 이동 시간이 최소 왕복 두 시간 이상이다 보니 많은 말이 오갈 수밖에 없다.
남편은 결혼 후의 생활이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고, 나는 첫째 아이를 가진 이후부터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동의했다.
우린 시차를 두고 서로의 힘든 구간을 지나가고 있는 셈이었다.
남편은 가족과 떨어져 회사 안에 있는 기숙사(출장자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에서 1년 넘게 살고 있고, 요리사는 한국 음식을 전혀 할 줄 모른다. 그나마 우리가 오기 직전 조각난 치킨으로 후라이드를 튀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먹을 만하다고 했다.
아침은 주스, 달걀, 점심은 인도식, 저녁은 밥 +밑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밑반찬이라고 해도 빈약하기 이를 데가 없다. 내가 들어올 때나, 남편이 휴가 나와 복귀할 때 가져온 즉석식품이 입맛 없을 때 도움이 되지만, 이것도 자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먹는 즐거움이 컸던 사람인데 이곳에서는 먹는 즐거움이 아예 사라져 버렸고, 한때 인생의 최대치 몸무게에서 20kg가 빠졌다.
철없는 아내는 출근을 앞둔 남편 곁에 앉아 싱가포르에서 샀던 바챠커피를 내려 마시며 남이 해준 걸 먹으니 좋다고 웅얼거린다. 하지만 나 역시 남편처럼 매 끼니가 기대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다. 다만, 메뉴가 무엇이든 내가 손수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지극한 감동을 느낀다.
나는 아침으로 구운 식빵에 버터, 계란프라이, 주스를 두 아이는 토스트, 삶은 달걀을 먹었다.
요리사가 점심은 어떤 걸 준비하면 되냐고 묻는다.
아마 점심은 라면이 아닐까 싶은데......
남편의 일상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다.
일주일 내도록 반복해서 머무는 이 공간 속에 우리가 잠시 와 있다. 우리가 돌아간 후 얼마나 적적할지 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좋지가 않다.
"4시간 후에 점심 먹으러 올게."
남편이 1층에 있는 자기 사무실로 가고, 우린 2층에서 남편이 올 때까지 책을 읽으며 기다린다.
"나는 일흔까지 일 할 거야."
"그럼 난 뭐 할까"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내 옆에 있으면 되지."
남편은 마냥 아내와 자식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