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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Mar 01. 2024

잠이 오지 않아!

-글램핑장에서

밤새 바람이 텐트 천막을 뒤흔들고, 빗방울이 천장부터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람과 빗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팔에 닿는 텐트 천막의 한기에 몸을 웅크렸다. 침대 장판의 따뜻함은 한쪽 몸에 닿는 한기에 상쇄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주르륵, 나도 모르게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려내렸다. 모두가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자는 새벽녘,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늦게 자는 습관도 있지만 불현듯 찾아온 사색에 잠을 놓쳐버린 것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는 글램핑장을 예약해뒀고, 평일이라 아이들 학원은 결석해야 했지만, 봄방학이니 마음 편하게 떠나올 수 있었다. 제주도에 갔을 때 글램핑장을 지나치며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묵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글램핑장은 영어 'glamorous'와 'camping'을 합쳐서 만든 신조어로, 모든 것이 편리하게 갖추어진 상태에서 야영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지퍼를 열고 들어간 천막 안에는 취사도구, 냉장고, 난방기구, 식탁과 캠핑 의자가 있었고, 거기서 또 텐트 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2개, TV, 에어컨,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는 깔끔하고 정돈된 텐트 내부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천막 안은 한기가 들어 추워서 등유를 넣는 난로를 켰다. 난로를 켤 때 특유의 냄새가 났기에, 바깥 공기가 들어오도록 천막의 지퍼를 열어 두었다. 시간이 지나자 천막 내부에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우리는 가볍게 맥주 한 캔씩 마셨다. 아이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나와 언니 둘만 남았다.


와인 한 병을 꺼냈다. 아이들용 물컵에 와인을 따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언니, 저 실어증에 걸린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사실 이걸 실어증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하긴 하다. '언어 장애'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국민학교 3학년 2학기 전학을 온 이후부터 나는 극도로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다. 이전에는 동네 아이들과 골목을 뛰어놀고 동네 오빠들과 도롱뇽,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는 아이였는데. 열 살 후반부터  스무살 초반까지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났다. 중2 국어시간이었다. 국어 시간에 돌아가며 책을 읽곤 했는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읽으려고 애를 썼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교탁 앞에 있던 선생님이 내 곁에 오셔서, 조금만 소리를 크게 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역시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당황스런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장면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까?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이로 자라났고, 슬픈 일이 있으면 꾹꾹 눌러담았다.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때 그 슬픔은 터져나왔고, 여기저기에 울음을 흘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밤새 뒤척이며 나는 왜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불쑥 꺼냈던 걸까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 이야기를.


내가 손에 꼽는 가장 친한 친구들과는...서로의 사연을 털어놓고 가까워져서 24년째 함께 해오고 있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도 똑같다. 그런데 이 언어 장애를 겪었던 그 순간은 얘기해 본 적이 없다. 부끄러웠던 순간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야기는 나의 유년기의 역사로 흘러갔다. 그리고 밤새 뒤척이며 나는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연세를 생각했으며, 이미 고인이 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비내리는 추운 겨울 새볔, 웅웅 거리는 바람 소리는 바깥에 누워 있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우리는 점차 사라져간다'는 인식 속에 깨어 있었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축축한 한기와 함께 점차 사라져 가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니 서러워졌다. 그래서 눈물이 흘러내린 거였다.


약점을 드러내는 일은 손해라고 한다. 굳이 상대방에게 내 약점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되어 나의 상처를 건드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한다면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미 끄집어낸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닌게 된다. 그냥 한때 있었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 속에서 의미부여하며 오래도록 붙잡고 있을수록 그것은 큰 산을 이루는 것 같다.


귀를 기울여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언니 덕분에 나는 용기내서 불쑥 말을 꺼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이미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다 지나갔다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어른이 된 가 계속 다독여 주었던 것 같다.


나의 소리내기는 글쓰기에서 시작되었고,

나는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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