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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Mar 16. 2024

자유로운 책 읽기

- 일탈의 즐거움


엄마표 영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마련한 곳이지만, 오늘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애초에 시작한 엄마표라는 것도 '책'이 기본이었고, 한눈을 팔다가 반성하고 돌아오는 이유도, 돌아와야만 했던 곳도 언제나 '책'이었다. 책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 집 책장에, 원래 있던 자리에. 아무도 손길을 두지 않는 그 자리에. 때로 손을 뻗어 아이를 향해 보여주면 흘깃 쳐다볼 뿐 외면받기 일쑤였던 그 책.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책.



어떤 책은 구매하고 2년이 되도록 외면받아서 베란다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그건 《좋은책어린이 저학년문고》120권짜리 전집이었다. 친한 언니 딸아이는 도서관에 빌려와서 푹 빠져서 읽는다는 이 전집에 우리 아이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내가 읽어주면 귀 기울여서 즐거워하며 들었는데, 혼자 읽으라고만 하면 몸을 꼬고 난리부르스였다.


4학년 신학기를 앞두고, 베란다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이에게 한마디 했다.


"노랑아, 엄마는 이 책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 완전 새책인데, 읽은 게 얼마 없네. 좀 아깝다. 우리 몇 권만이라도 좀 읽어 볼까?"


그때부터였다. 아이는 틈만 나면 자신의 방 베란다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왔다.


나는 한 가지 저절로 깨닫게 되었는데, 저학년문고라 해서, 1, 2학년만 책을 읽으란 법이 없다는 거였다.

이 나이 때는 이걸 읽어야 하고, 조금 더 크면 이걸 읽어야 하고, 무슨 공식인양, 떠도는 이야기는 내 아이를 위한 맞춤 답안이 아니라는 것을.


노랑이의 정신 연령, 어휘 수준, 혹은 자신이 학교에서, 가정에서 맺은 관계들에 대한 경험 등이 이제야 이 책과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편향된 영어 독서로 인해 노랑이의 한글 어휘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창 영어에만 신경 쓸 때, 그 이야기를 매번 들으면서도 체득하지 못했다.


영어 독서는 절대 한글 독서를 뛰어넘지 못한다.


계속 한글책을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영어책을 더 중요시 여겼던 마음을 인정한다. 아이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지금 아이는 한글책을 읽는 비중이 늘었고, 영어책은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그리고 청독을 내려놓고 묵독으로 가는 추세에 있다.



얼마 전에 케이트 디카밀로의 번역서《내 친구 윈딕시》를 읽었기에, 뉴베리 수상작인 《Because of Winn-Dixie》를 들이밀었다. 작년부터 읽히고 싶어서 기회를 보아왔던 책인데, 그림도 없고 글자만 있다며 아이가 거부했었다. 하지만 행간이 넓고 페이지에 글자수도 많지 않아서 도전해 볼 법하다고 생각했다. 한글책을 읽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청독으로 읽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두 챕터씩 읽고 있다.


계속 챕터북에서 맴도는 것 같아서, 조금 더 확장시켜주고 싶은 생각만 들었는데, 이렇게 한글책을 읽고 영어책을 또 읽으면 훨씬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고, 한글책과 영어책을 비교할 수 있어 좋다.


아이는 원제는 '윈딕시 때문에'인데, 우리나라는 '내 친구 윈딕시'라고 번역했다면서, 제목이 달라진 점을 바로 얘기했다. 여기서부터 물음표가 시작된다. '왜 제목을 이렇게 바꾸었을까?'라고.


오늘은 기존에 하던 루틴을 모두 내려놓고, 책만 읽으며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물론 그 와중에 보드게임도 하고, 닌텐도 게임도 할 것이다. 하지만 쳇바퀴 돌듯 찍어내던 루틴을 내팽개칠 거다. 오늘 하루의 일탈이다.


"오직 인간들만이 사로잡혀 있다." (박경리,《토지》5부 3권)


이왕 사로잡힐 거라면 그것이 '책'이면 좋겠다.

나는 '책'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영원히 헤어나지 않길 원한다.

우리 집 두 꼬맹이들도 책을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텐데,

책을 사다 주고, 빌려주고, 눈앞까지 들이밀 수는 있지만 선택은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책은 여전히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다.


두 아이는 몇 년 전부터 있었던 책을 이제야 관심 있게 바라본다. 한참 관심 있었던 책에는 무심해지기도 하고.


그래도 책은 그 자리에 놓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우리는 그저 고개를 들어 손만 뻗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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