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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Oct 05. 2024

[시] 몰래,

<몰래,>



초록색을 가지고 싶다

초록의 상징을, 젊음을, 싱싱함을, 눈부심을 

이제 여름이 지나갔는데, 끝까지 매달려 있는 강인함을.

매일 같은 길을 걷는데, 

바닥에는 갈색 잎사귀들이 말라서 이리저리 쓸린다.

고개를 들면 초록색의 처연함이 눈을 찡그리게 만든다

손을 뻗어서 잎사귀들이 차마 덮지 못한 하늘의 조각을 만져본다

자전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노랫소리,

아는 노래다 마음속으로 따라 불러 본다

오늘 밤엔 보름달이 뜨지 않을 것이다, 흐릿한 빛을 낼 수도 있지

그렇다 해도 달은 매일 뜬다, 

구름에 가려져도 해는 그 자리에 있듯이

곁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땐 끄적인다

그러면 내곁에 스미는 따스한 손길과 눈길,

고요하다

바람이 몹시 불 때면

길가에서 품을 내어주는 가로수길을 생각한다

봄에는 한가득 꽃을 피워냈던 벚나무들이

가을길을 저리도 환하게 밝혀준다

어서 오라고, 잘 가라고, 또 오라고.

어느 햇살 가득한 날 나는 마지못해 우산을 꺼내고

슬쩍, 몰래,

하늘을 보는척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들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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