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자세히 알게 되면 오히려 시작하기 두려워진다.
일본어 번역가를 꿈꿨을 당시, 인스타그램으로 한 출판사에서 번역 제의를 받았다.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번역가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온건가?'라는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그렇지만 아직 책 한 권을 끝까지 번역해본 경험도 없고, 일본어 능력시험 N1(가장 높은 등급)을 딴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고민이 많이 됐다. 그래서 번역가와 번역가 지망생이 모여 있는 카페에 글을 남겼다.
그러자 현직 번역가들의 따끔한 충고가 이어졌다. '반밖에 해석이 안되는데 어떻게 번역가를 하시려고 그러냐, 90% 이상 직독이 가능하더라도 막상 번역을 하게 되면 어렵다.'는 댓글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일단 시작하면 하게 돼있다고 번역가의 시작을 응원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카페에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단어를 모르는 건 사전이 커버해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번역 스터디도 1년 넘게 해 봤으니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보지 않았기에 나오는 무서운 자신감이었으리라. 결국 샘플원고를 보내고 나서 탈락했고, 그 후로 번역 일에 대해 더 조심하고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강아지가 좋아서, 강형욱 훈련사와 같은 반려견 행동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반려동물학과를 가게 됐다. 개에 대해 공부하기 전까지는 '나도 빨리 예쁜 강아지 한 마리 데려와서 키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직접 강아지를 부딪혀보고 배우고 나서 함부로 키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에 오랜 시간 비우면 강아지한테는 그게 죽을 만큼 힘든 일이란 걸, 강아지는 나밖에 보지 않는다는 걸, 어렸을 때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강아지의 성격과 행동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감히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과 키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기 전부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길에 있는 유기견을 봐도 쉽게 데려오지 않는다. 책임감이 얼마나 커야 하는지 그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차라리 개를 공부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어떤 분야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하지도 않은 일인데 많이 알아버리는 것은 성장하는데 방해가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어차피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일단 도전해보고 그때 가서 잘못했던 걸 배우면 된다.
앞으로는 시작이 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부족해도, 그대로 인정하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