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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Feb 29. 2020

파닥거리는 작은 새에게 나는 손을 내밀었던가요?

-  퇴직하는 어느 평교사의 당부를 생각하며

"포승줄에 묶인 아이를 봤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파닥거리는 작은 새에게 나는 손을 내밀었던가요?

예순이 넘은 평교사가 울먹였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입을 열기까지 몇 초의 시간, 목울대가 작게 움직이고, 마이크를 잡은 손가락이 위치를 잡지 못해 들떴을 것이다.  내 머리 위에서는 난방기 바람이 뜨겁게 내리쳤다.


"제 키가 180정도 됩니다. 30년 교사 생활하면서, 출판사, EBS, 교육과정평가원 온갖 데에서 책을 쓰고 문제를 냈어요. 자랑하자면 교과서만 3권인데, 쌓으면 제 키를 넘길 겁니다. 그런데 뒷산을 보니 부끄러웠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었을까요? 제 키만큼 쌓인 책들을 버리면서 뒷산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었던 아이,  포승줄에 묶여 두려움에 떨던 아이,  숱하게 만들던 문제와 썼던 책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좀 더 기꺼이 건네지 못한 손만이 부끄럽게 남는다고 하셨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은 무엇이 여러분에게 남을 것인지 생각하시기를,  나를 빛내는 아이들에게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하셨다. 고개를 들어 그 선생님을 볼 수가 없었다. 당신은 사랑이 많은 교사가 아니었지만,  여러분은 사랑만이 남는다는 것을 아는, 사랑이 많은 교사가 되기 바란다는 당부의 말로, 노교사는 30년의 교사로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사랑만이 남는다는 것을 아는 교사, 사랑이 많은 교사는 어떤 교사일까?


첫 아이를 낳고 휴직을 했을 때, 그 아이에게 전화가 왔었다. 특별한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 아들 이름은 뭐냐, 요즘은 어디 사시냐, 뭐 그런 걸 아이가 물었고, 나는 술 너무 마시지 말고, 늦어도 학교는 꼭 가서 졸업은 하라는 선생다운 말을 했다. 평일 늦은 아침이었는데 아이는 술에 취해 있었다.  학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한 내 새끼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온나절 신경질을 달고 사는 나에게 평일 낮까지 술에 취해 있는 몇 년 전 제자의 안부는 잠깐의 안타까움만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얘가 나에게 좀 더 달라붙으면 어쩌지? 좀 잘해줬더니 학원비를 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그 이후 '저격문자'를 보내는 제자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 교사를 옆에서 본 터라, 쟤가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면 어쩌지 하는 섣부른 걱정이 안타까움보다 앞섰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말일 것이다.


나는 복직을 했고, 그 아이는 졸업을 했다. 전화가 왔다.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 맥도널드 2층에서 건너편 피자헛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실 옆에 있어 언제나 쿰쿰한 냄새가 배어있던 1학년 15반 교실에서 신학년 배정학급을 알려준 겨울방학식이 우리가 만난 마지막 날이었으니, 시간은 꽤 흘러, 그 아이는 휴대폰 판매사원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인근 학교 하교 시간이 겹치면서 맥도널드 2층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점점 어수선해졌고, 그럴수록 알아보는 학생들이 있을까 나는 더욱 건너편 피자헛 간판만 바라보았다. 맥도널드와 피자헛 건물 사이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파도가 출렁이듯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쓸려 올라왔다 쓸려 내려갔다. 어디에 있던 사람들일까,  바지락을 해감하면 끝도 없이 잔모래들이 쏟겨 나온다. 이제는 끝인가 싶은데도 또 모래가 바닥에 가라앉는다. 시댁에서 보내 준 한 꾸러미의 바지락을 새벽 내도록 해감하면서 끝도 없이 나오는 징글징글한 모래를 봤다. 어디 숨어 있었을까, 그 바지락을 버려버리고 싶었다.


해가 졌던가. 피자헛 간판의 빨간 불빛이 더 강해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그마한 체구의 그 아이는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내 아이를 찾으러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사랑이 많은 교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시든 것도 살리는 손길을 가진 교사라면, 윤나게 무엇인가를 닦을 줄 아는 교사라면, 끝도 없이 나오는 모래를 끝까지 제거하며 바지락을 손질할 줄 아는 교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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