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생명을 논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사신은 핸들을 잡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그 행동에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 뭔가 아쉽네요.”
“나는 한 번만 봐도 되는 존재야.”
“그래도...”
시무룩한 나의 표정을 보고
사신은 웃으며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표정이 꽃처럼 피었지만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저승에 도착하면 영화처럼 재판을 받나요?”
“어떨까나~”
사신의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그런 건 안 해, 단지 선택할 뿐이지.”
“어떤 선택인가요?”
“스포일러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도 조금은 말해주실 수 있잖아요?”
“안돼”
사신의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사신으로써의 사명이야, 말해줄 수 없어”
그렇게 말하고서
사신은 차를 세웠다.
도착한 곳은
우주를 그린 검은색 물감이
캔버스에 머물고 있었다.
별들은 각자의 색깔을
마치 생명처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로라가 펼쳐지며
보이지 않았던 다리가 나타났다.
사신은 따라오라고 말한 뒤
천천히 앞장서서 걸어갔다.
나는 빠르게 다가가서
사신과 함께 걸어갔다.
“저승이 이렇게 예쁘다니...”
“누가 보느냐에 다르니까 말이지.”
“그래도, 믿기지가 않네요...”
“자자, 날 따라와.”
나는 사신과 함께
강과 강 사이의 다리를 건너갔다.
사파이어를 녹인 듯한 강과
에메랄드 빛 나무들은 화려하게 맞이했다.
잠시 올려다봤을 때,
태양보다 밝은 듯한 별들이
별자리를 그리고 있었다.
내려다봤을 때는
오로라의 색깔처럼 투명해서
잔잔하게 흐르는 강이 인사했다.
이런 곳이 저승이라니.
나는 감탄하면서
천천히 구경했다.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사신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다.
사신은 그런 내 모습을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천천히 모자를 눌러썼다.
사신과 함께 도착한 곳에는
엄청 높은 울타리가 있었다.
내가 있는 쪽은 밝았지만
저 너머는 어두웠다.
그리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곳곳에 홈이 파여있었다.
울타리를 보면서
내가 이리저리 생각할 때
사신은 한숨을 내쉬고서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의 역할은 끝이야.”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엄청 놀라서
사신을 바라보았다.
모자에 눌러진 가면은
나를 향하지 않고 있었다.
“너는 저 울타리를 넘을 수도 있고,
넘지 않을 수도 있어. 스스로 선택해야 할 때야.”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사신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아주 희미한 떨림이 느껴졌다.
“저... 저렇게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가요?”
“몰라, 그건 네 선택이야.”
“그... 그러면, 저 혼자서 여기에 있으라고요?”
“그렇지, 이제 내가 관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데려온 건 사신님이잖아요!”
“그 모든 게 너의 선택이었잖아?”
그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억지로 언어를 끌어냈다.
“저 혼자서는 무서워요!”
“안돼.”
“그러면 올라갈 때까지만 곁에 있어주면 안 돼요?”
“안돼.”
“대체 왜요?!”
내가 울먹이면서 말하자,
사신은 깊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 나는 사명을 지켜야 해.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고, 떠나야 하지.
죽음에 대해 알려줄 수는 있어도, 그 너머는 네가 선택해야 하니까”
그 말에 나는
사신의 로브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사신은 단호하게
내 손을 떼어내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허겁지겁 달려가
다시 잡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나는 목이 쉴 때까지
사신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때처럼
마음이 차갑게,
서서히 망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