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친구의 메시지다. 뜬금없이 아이의 몇 년 전 사진을 보내왔다.
동글동글 바가지 머리와 흘러넘치는 볼살, 짧고 통통한 팔다리...
꺅!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너무 귀엽다. 4D 영화처럼 보송보송 아기향이 액정 너머로 풍겨오는 것 같았다.
'내가 저런 아기를 키웠었지.'
제대로 앉지도 못해 앉혀놓으면 스르르 눈 녹듯 무너지던 아기, 우르르 까꿍에 끅깍끅깍 숨넘어가며 웃던 아기, 통통한 손가락을 뻗어대며 응! 응! 하던 말 못 하던 아기, 낮잠에서 깨면 발그레 물든 뺨으로 한참을 안겨있던 아기... 순식간에 나는 3 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너무나 그리워졌다. 잠도 길게 못 자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안고 다니던 그 시절이 말이다.
메시지를 보내온 친구는 한창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뽀얗고 부드러운 백설기 같은 아가와 함께 무척 행복하고 몹시 힘든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옛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이 제일 귀여울 때라고, 힘들겠지만 부디 즐기기를 바란다고.
분유를 먹는 아기가 하품을 하면 아주 귀여운 치즈 냄새가 났다. 그런 아기가 싼 응가에서는 요거트 냄새가 났다. 잔뜩 흥건해진 가제 수건에서 나는 젖비린내마저도 달콤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지금은? 그냥 완전한 인간이다. 몹시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우리 딸의 아기 시절을 추억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자니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솜털이 보송한 친구의 아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저 귀여워서 발이 동동 굴러졌다. 우리는 '아기는 왜 이렇게 귀여운 것인가'에 대한 고찰 끝에 '귀엽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극한 노동'이라는 다소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X냄새까지 귀엽게 만들어놔서 홀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이 극한의 사랑스러움 덩어리들.
새벽녘 몇 번이고 일어나 반 좀비 상태로 우유를 먹이고, 허리가 나가도록 안아 재우는 중노동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아기를 한 번만 더 안아볼 수 있다면!' 하고 소원하게 되는 것이 육아인 것 같다.
아이는 요즘 몇 달 후면 여섯 살 언니가 된다고 들떠있다. 제법 어른같이 말할 때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색종이를 제법 반듯하게 모양내어 접을 줄 안다. 가사를 잘 외워 부르는 노래가 늘고 있으며 동네에서 아기들을 만나면 귀여워해 주고 챙겨준다. 남편과 둘이 얘기하면 자기랑은 왜 말 안 하냐고 삐지기도 한다. 부쩍 어린이 같은 모습과 행동이 기특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아쉬워만 하기에는 아이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다.
다섯 살 아이를 그리워하며 발을 동동 구를 몇 년후의 나를 이미 알 것만 같다. 게임을 하다가 지면 으앙 하고 울어버리는, 소방차와 경찰차를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삐뚤삐뚤 자기 이름을 써놓고 으스대는 지금의 아이를 말이다.
순간을 소중히. 다시 안 올 시간들이 간다. 빠르게. 아쉽게.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손을 맞잡고 길을 걸으며 짹짹 노래 부르는 목소리를 만끽하자. 찬바람이 작은 뺨을 빨갛게 얼릴 때면 나는 또 지금의 아이를 그리워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