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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06. 2020

에이 별 거 아니네 하나도 안 무섭네

"엄마, 무쪄워.."

"엄마, 저기 아래에 뭐 있어.."


아유. 요놈이 이번에 또 뭔 신박한 방법으로 엄마를 깨우려 하는가. 눈을 뜨니 아직 새벽빛이 어슴푸레한데...  잠탱이 아가를 키우는 축복받은 엄마가 아니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동틀 무렵 맨 정신이 든 아이는 다시 잠들 확률 0.000001% 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달래 본다.


"꿈꿨어? 무서워?"

"아니, 엄마 저 밑에 봐봐. 뭐 있어."

"뭐가 있어?"

"봐봐 뭐 꺼먼 거..."


머리맡을 더듬거려 안경을 찾아 쓰고는 발치를 바라본다. 둥글둥글한 까만 뭔가가 있다. 가까이 보니 인형이었다. 몸집이 동그란 아이의 분홍 고양이 인형.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더니 그제야 "에이, 요요캣이었네~ 분홍 몸에 하얀 발 하나도 안 무섭네~" 하며 경쾌한 솔톤으로 남은 잠 기운을 탈탈 털며 방을 나섰다.

(안 무서운 거 확인했으면 다시 자도 되잖아...털썩..)


아이의 단잠을 깨운 것이 네 고양이 놈이렷다?!



아이가 새벽녘부터 떨던 호들갑에 예전의 내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나도 어렸을 때 아이처럼 어스름한 밤 그림자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 눈이 많이 안 좋아 목욕탕에 가면 다른 아줌마한테 가서 엄마라 부르던 고도난시 어린이. 안경 벗고 누워 멀뚱히 방안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흐물흐물 유령의 실루엣으로 보였다.

'아오, 뭐야 저거 여자 귀신 모양이잖아.'

'저 하체 없는 괴생명체 같은 실루엣은 뭐지?'

두려움은 상상력과 결합하여 미스터리 영화의 마지막 생존자 같은 심정이 되고야 만다. 다행히 하루의 거대한 피로가 공포를 이기면 그대로 잠에 들고, 그렇지 못한 경우 하다 하다 불을 슬그머니 켜서 형체를 확인하곤 안심하며 잠을 청했다. 그 공포의 실루엣은 우습게도 옷걸이에 걸려있는 긴 코트, 창가의 꽃병, 의자에 쌓아놓은 옷무덤 따위였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일까, 어른이 되고 나서 일까. 잠자리에 들어 그런 어스름한 형체에 두려움을 느낀지는 오래되었다. 대신 더 형체 없는 두려움에 뒤척이던 밤들이 이어졌다. 이를테면 가정의 불화나 아빠의 병환. 가난과 진로. 대학에 가고 회사를 다니고서는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길, 그리고 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돈이 아닌 정말 없기만 주야장천 없는 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아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된 지금은 두려움에 잠식될 시간이 없다. 일 분 일 초가 아깝게 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불안하고 두려웠던 청춘 시절이 조금은 지나가서일까. 나름 안정된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완전과 영원을 보장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안정적이라 말할 수 있겠냐만은...) 살다 보니 막연한 두려움도 맞닥뜨리면 별 거 아니더라는 경험치가 쌓인 것이 가장 적절한 이유가 될 것 같다.


지레 만들어낸 두려움은 마치 아이 발치에 거무스레한 어둠을 입고 있던, 사실은 발랄한 핑크를 입은 고양이 인형일지도 모른다. 언제 또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잠 못 들게 할지 모르지만 "에이, 별 거 아니네. 분홍 몸에 하얀 발 하나도 안 무섭네~" 하고 말하던 발랄한 아이 목소리를 떠올려보련다. 안경을 고쳐 쓰고 환하게 불을 밝혀 실체를 확인할 용기까지 덤으로 생기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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