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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30. 2020

오늘도 너에게 배운다

"엄마, 팩 해. 내가 해줄게! 응?"

아이는 모두불태워라바우와우와우퐈이어스러운 내 화난 표정을 보더니 난데없이 팩을 해주겠단다. 피곤했는지 오만 짜증을 부리던 아이를 씻기고 나니 나 역시 오만 성질이 나버린 것이다. 

(아, 6 세 아동과 똑같이 단순 명료한 감정선 어찌할 것인가!) 


"팩은 무슨 팩이야!" 하고 팩 가버리는 엄마를 아이는 졸졸 쫓아온다. 

"팩 해~ 응? 내가 해줄게."

똑같이 화낸 것이 미안하고, 엄마 기분을 풀어주려는 아이가 고마워 슬쩍 끌어안고 냉장고 귀퉁이에서 팩을 꺼내 준다. 작은 손으로 톡톡톡. 이마에, 볼에 경쾌하게 닿는 아이의 터치가 사랑스럽다. 아이는 물티슈에 눈코입 모양을 뚫고 물을 더 흥건히 적셔서는 얼굴에 척 붙이고 내 옆에 누웠다. 서로 얼굴을 토닥이며 낄낄낄 웃는다. 


아이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기분이 풀리면 웃고 안긴다. 

불편한 마음을 녹이는 방법은 그냥 손 한 번 잡고 히죽- 웃는 건데... 기싸움, 감정 겨루기 이런 것을 모르는 아이 앞에서 나는 바보가 된다. 자존심만 남은 바보. 

아이의 맑은 눈이, 눈처럼 맑은 마음이 예쁘고 아쉽다. 자존심 방패로 완전 무장한, 바보 같은 어른 세계에 발을 디딜 그 순간이 언젠가는 올 텐데... 또 모르지. 그 사이에서 마음 많이 다쳐가며 언젠간 너도 그런 바보가 될지도.


아이 덕분에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간다


자려고 누워서는 이런다. 

"아까는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미안해서 못 말했어. 부끄러워서."

이 순수한 영혼 앞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성질(?) 배틀을 부렸던 애미는 다시 자진하여 쓰레기봉투를 찾는다. 예... 서귀포시 규격봉투로 주세요.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사랑 앞에 내세울 것은 자존심도, 복수도 아님을. 그저 부끄러운 마음 꼭 참고 내미는 손임을. 


외식으로 얼큰한 것 좀 먹어보고 싶고, 주말에 시원하게 산이나 한 번 올라가고 싶을 때면 아이가 얼른 컸으면 좋겠다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 집 작은 인간은 덩치만 큰 두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지혜와 위로를 나눠주는지 모른다. 이 바보는 우리 집 작은 인간의 위대함을 종종 망각하며 바보같이 살고 있다. 따뜻하고 다정한 날들이 속절없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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