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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04. 2020

왜 우리 엄만 늘 내 걱정만 하는지 ~ ♪

사랑이라는 진부한 변명 말고

난 이담에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요

친구와 함께 매일 고민을 해봤죠

미끄럼 타고 그네도 타고 물장구치고 싶은데

왜 우리 엄만 늘 내 걱정만 하는지 ~ ♬♪


데프콘의 '힙합 유치원'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다.

어제 아이는 데프콘이 진행하는 뮤직박스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종일 흥얼거렸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로는 어린이집에서도 계속 계속 불렀다고.


'미끄럼 타고 그네도 타고 물장구치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이 공감돼서 이 노래가 좋은 걸까? 아니면 쉽고 경쾌한 멜로디? 신나는 랩? 어떤 포인트가 좋은 건지 궁금해 물었더니 예상외의 대답. "왜 우리 엄만~ 늘 내 걱정만 하는지~" 부분이 아주 자기 마음과 꼭 들어맞는단다. 헉, 갑자기 후라이팬으로 뒤통수 때리기 있냐 읍냐.


그리곤 부연설명도 한다.

"엄마 아까도 미끄럼틀 더 타고 싶은데 집에 가자고 했잖아~ 엄마는 못하게 하는 게 많잖아~ 그러니까 이 노래가 내 마음이랑 꼭 맞는 거야."

참나. '그건 찬바람에 콧물 줄줄이라 밤에 잠도  자니까 그런 거지!', '이만하면 뭐든 많이 봐주는 엄만데...!', ' 충분히  멋대로 살고 있잖...' 여러 가지 변명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뱉으면  " 우리 엄만~   걱정만 하는지~" 늪에 빠질  같아 참았다.


두고 보자 데프콘... (출처 EBS)


저녁 먹으며 오늘 신나게 흥얼거린 그 노래 이야기가 또 나와서 이번에는 남편까지 합세해 부모 입장을 열심히 대변해본다. "진짜 엄마 아빠가 너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 감기 걸리든지 말든지, 씻든지 말든지, 밥 안 먹고 키 안크든지 말든지?" 그랬더니 "아니~ 그래도 해야지 조금은~ 걱정을~" 하며 홱 토라진 표정을 짓는다.

엄마 아빠의 걱정을 사랑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 과장되게 설명하며 합리화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공감했다는 그 가사가 예사로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그랬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잔소리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가 얼마나 많았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정신 차려보니 기계 같은 잔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고장 난 화재경보기처럼 훈계하고 다그치고 경고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지긋지긋한 잔소리'로 듣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아이가 자연스레 겪고 깨닫게 될 일도 괜히 나서서 지루한 조언을 보태지 않았는가. 별 일 아닌 것에 으름장을 놓진 않았던가. 딸이 커서 엄마의 열리는 입을 보며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까 봐 번뜩 겁이 난다.

지금이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저 작은 인간은 내가 조종하는 로봇이 아니라고. 엄마 말은 틀린 적이 하나 없다는 말은 틀렸다고. 꼭 필요한 말만 할 수는 없겠지만, 필요도 없고 듣기도 안 좋은 말은 자제하자고.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잔소리를 아주 안할 수 있겠냐만은 '아, 우리 엄마 말은 들을만해.'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게 적당하며 적합한, 효율적인 말들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 육아는 정말 하면 할수록 어렵다.




오늘 아침.

무거워서 입기 싫어하는 두툼한 점퍼를 엄포를 놓으며, 억지로 입혔다. 날씨를 찾아보니 어제보다 온도 차이가 꽤 났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일까. 막상 걷다 보니 전혀 춥지 않았다. 경량 패딩으로도 충분한 날씨였다.

다시 다짐한다. 엄마 말은 틀린 게 하나 없긴 뭐가 없냐고. 나라는 엄마는 자주 틀린다고. 그러니 우격다짐으로 '엄마 말이 다 맞아!' 같은 횡포는 부리지 말자고.

괜히 머쓱한 기분으로 공기 참 좋네~ 하며 걷는다. 잡은 아이 손이 뜨끈해 더 머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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