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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05. 2021

구아바와 초보 가드너


시무룩.

구아바 잎이 고개를 떨궜다.

물 줄 때로구나!

식물 킬러까지는 아니지만 어리숙한 아마추어 가드너에게 물 줄 타이밍이 확실히 보이는 식물은 고맙기까지 하다. 물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겉흙을 만져보고 깊이 손가락도 넣어보고 잎 표면을 만져보면서도 타이밍을 놓쳐 보내버린 경험이 꽤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정성 다해 키우던 유칼립투스가 물 주기 타이밍을 한 번 미룬 대가로 파사삭 스러졌다. 까다롭다는 유칼립투스를 일 년 넘게 키워오며 아임 낫 똥손을 외치던 아마추어 가드너의 자신감도 덕분에 파사삭...


물을 달게 마신 구아바 잎사귀는 곧바로 신이 나 방방거린다.

내가 구아바를 좋아하는 이유다. 구아바 잎은 물이 부족하면 축 쳐지고, 물을 주면 바로 팽팽해진다. 대게 식물이라는 것이 동물에 비해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마신 구아바는 마치 간식을 받아 든 행복한 강아지 같다. 쭈욱 쭈욱 기지개를 켜는 것도 같고 방방 뛰는 것도 같다. 세상사가 구아바처럼만 명료하면 힘들 일이 없을 텐데. 사람들 마음이 구아바만 같으면 상처 줄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없을 텐데...


친구가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기 전에 그 어떤 전조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자식에게 부담될까 미처 말하지 않는 부모님 노화의 애로사항을 다 알 수 있다면, 아이의 필요를 모두 알아챌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원하는 명료함 들을 늘어놓다 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내 마음조차 알지 못해 끙끙대는 게 인생인데 구아바의 명료함을 꿈꾸다니 맹랑하다. 복잡다단한 삶의 모양들을 뒤로하고 구아바의 명료함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황급히 둘러대 본다.


그저 구아바는 불쌍한 아마추어에게 가드닝의 기본을 가르쳐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 있게 해 보라고. 목이 마른 것 같으면 물을 주어라 하며. "사과는 빨강!"만 외쳐도 손뼉 쳐주는, 아기를 돌보는 마음인 걸까.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와 애끓는 마음, 부끄러움과 죽음... 각기 다른 의미의 빨강은 삶으로 겪어내며 알아갈 뿐이다. 겉흙의 마름과 잎의 윤기, 일조량과 통풍, 각기 다른 식물의 성정들은 열심히 살펴보고 알아가야 할 초보 가드너만의 숙제인 것이다.


키우기 쉬워요?

화원에 가면 꼭 묻게 되는 질문이다. 봄이 되면 식물들을 몇 종 들이고 싶다. 눈에 드는 예쁜 것이 있다면 키우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와도 품에 꼭 안고 오고 싶다. 명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오종종 늘어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리라. 내 안팎의 것들도 슬그머니 풀어놓고서.




+ 겨울이라 아이들이 왠지 시름시름하다.

구아바가 생을 다 하면 진짜 식물을 위해 가드닝 생활을 끊(?)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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