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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11. 2021

착해야 하나요?

feat. 그림책 독후감을 가장한 육아 잡담 한바가지

착한 사람이 되는 것. 우리 부부의 단골 대화 주제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굉장히 성취감을 느끼는 타입이다. 가정에서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늘 노력하기에 나와 아이는 그런 성향의 덕을 많이 보고 산다. 하지만 때로는 본인의 순수한 욕구를 너무 억누르고 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남편말로는 어릴 적부터 예쁨 받고 칭찬 받는 것이 좋았고, 착하고 살가운 아들로, 학생으로 평생을 살아와서 본인의 자아가 억눌려있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신난다고.

다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한 성향 때문에 음악을 좋아했지만 감히 창작자를 꿈꾸지는 못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삶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 누군가의 평가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표현하는 부분이 부족해서 예술하기에 적합한 타입(이랄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남편이 아이를 바라볼 때, 자기와 비슷해 애잔하게 느껴진 적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는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순하고 착하다. 아기 때부터 밖에서 엄마 아빠를 곤란하게 한 적이 없다. 드러눕거나 세상이 끝날 것처럼(?) 고집을 부려본 적도 없다. 집에서야 대체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지만 그마저도 엄마 아빠와 많이 타협하며 결을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집에서 고집을 부리거나 성질을 피울 때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로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 "집에서라도 제 맘대로 하라고 하자." 아이는 밖에서 흠 없이, 지적받지 않게, 아니 사랑받고 칭찬 받으려고 노력한다. 본인의 순수한 욕구를 많이 제어하고 가다듬으려 노력한다. 이것을 사회화가 잘 되었다고 해야할지, 구닥다리말로 얌전하고 착하다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부모인 우리는 어떤 포인트에서 그런 모습이 짠하고 안쓰러운 것이다.


착해야 하나요? | 로렌 차일드 지음 | 작은곰자리



SNS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도서관에 신청했다. <착해야 하나요?> 제목을 보자마자 얼마전 아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대형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는 신나서 마트에 갔고, 사야할 품목을 적어갔기 때문에 물건들은 착착 카트에 넣어졌다. 왜인지 그날따라 기웃기웃 한가한 장보기 모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신속정확하게 장을 보고 계산대에 줄을 서고 나니 마트행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산대 앞의 미니 코너에서 군것질거리라도 사주려했지만 계산 순서에 밀려 그마저도 어영부영 못하게 되었다. 아이는 전혀 기대했던 바가 없었는지 이런 내 은근한 미안함은 알아채지 못하고 명랑하게 차를 탔다. 뭐 사달라고도 안하고 생전 장난감 구경하고 싶다는 소리도 안하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다음날 아이에게 "마트가면 장난감 구경 안하고 싶어?" 물었더니 하고 싶단다. 왜 안하냐니 엄마 아빠가 싫어할까봐 라는, 엄마 입장에서 굉장히 짠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명 비글같은,  세상 텐션의 자유로운 영혼을 키우는 이가  글을 본다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X 싼다고  수도 있겠지만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것이 부모다.

"자식이 우리 말을 따르는 건, 까놓고 말해 우리가 그 아이의 팔을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야."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처음엔  구절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생존의 여부를  사람들 말을 따르는  본능이다. 어쩌면 나의 아이도 자기를 키워주는 부모에게 최대한 맞추려 노력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착한 아이다, 좋은 아이다라는 말로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아이를 정말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이끌려는 목적 있겠지만, 조금 삐뚤게 보자면 부모가 자기 입맛에 맞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말대로 하면 편하니까, 마음이 놓이니까. 나도 어쩌면 아이의 순전한 생각과 욕구를 존중해주기 보다는  편하자고 아이를 구슬려온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오소소 소름돋은 팔을 쓰다듬는다. 부모로서 해야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것을 규정할 때도 최대한 신경써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그것을 단순히 ‘착한 vs말썽’ 이라는 구도로 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성과 함께.


로렌 차일드의 <착해야 하나요?>에는 두 남매가 나온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먹기 싫은 브로콜리도 먹고, 동생을 대신해 청소도 도맡는 오빠와 항상 제멋대로 행동하는 동생. 착한 행동을 하고 늘 착하다 칭찬받는 오빠는 어느 순간 동생을 보며 뭔가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질문한다. '왜 착해야 하나요?'

책을 다 읽고 아이에게 물었다. "꼭 착해야 할까?" "그래도 착한 게 좋은 거 같아. 엄마는?"

"엄마 생각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꼭 착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나는 착한 아이도 나쁜 아이도 아니에요."

책 속 남매의 말처럼 넌 착한 아이도 나쁜 아이도 아니라고, 그것에 너무 너 자신을 옭아매지 말라고는 마음 속으로만 덧붙였다.




덧,

남편은 책 제목을 보더니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네 이런 책도 다 나오고~ 한다.

세상은 끊임 없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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