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멀어져 살다 보니 '때'라는 것에 조금 더 예민한 촉수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집 앞 매화나무에 꽃봉오리 오종종 달리면 곧 봄이 온다는 것, 그늘진 길의 동백꽃이 만개하면 얄미운 꽃샘추위도 곧 지나가리라는 것. 벚꽃이 활짝 피면 야속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제주의 봄비는 꽤 길어서 고사리 장마라고도 한다는 것. 주야장천 몇 날 며칠 내린 비가 그치고 나면 청보리를 시작해 온갖 연둣빛들이 반짝거리고, 슬슬 반팔을 입어도 무색한 날씨가 된다는 것... 제주에서의 세 번째 해를 지나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자연의 순서랄까.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좋다. 구석구석 뭐가 피었나, 뭐가 열렸나 들여다보는 내가 좋다. 해가 들지 않는 구석의 하얀 꽃들을 보면서 곧 탐스럽게 열릴 빨간 산딸기가 떠오르고 슬며시 웃음이 난다. 겨우내 물기 없이 꼬독꼬독 서 있던 수국나무 가지에 푸르고 커다란 잎이 달리기 시작하면 내 마음도 훅 커다랗게 부푼다. 질서 없이 허둥지둥 사는 내게 자연은 차분히 모든 차례를 알려준다.
시야가 아득하게 푸르러지는 사 월의 길을 걷는다.
봄, 제주의 숲길 곳곳에서는 산딸기를 제법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어느새 꽃을 떨구고 그 자리에 맺혀있는 보송보송한 초록색 산딸기를 보며 나의 일곱 살 딸을 생각한다. 아이는 요 며칠 가벼운 질환을 앓더니 어리광이 심해졌다. 한 나흘을 버티다 오늘은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벌어진 입에선 뜨거운 용암처럼 아무 말이나 뜨겁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기도 아니고..." "언제까지 도대체" "지친다 지쳐"
... 미안했지만 별 수 없었다. 가끔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엄마는 베이스캠프라 언제든 아플 때 힘들 때 안락한 요지가 되어줘야 한다. 넉넉하게 받아줘야 한다. 하지만 엄마도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이리저리 치여 지치면 엄마도 어느 순간엔 안락한 휴식처가 되어줄 수 없는 것이다.
내년이면 학교에 가는 아이는 어느 순간 다 큰 사람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다 컸다고 하기엔 너무 아기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귀엽다는 말을 질색하면서도, 어허-하고 으름장을 놓으면 뿌에엥 하고 입부터 네모를 만들곤 서러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말은 청산유수라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다가도, 돌아서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발을 쾅쾅 찧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의젓하고도 천방지축인 아이. 뿌듯하게 웃다가도 어떤 일엔 겁이 난다고 자신 없다고 눈물짓는 아이를 바라본다. 꽃은 벌써 떨어져 버렸고, 산딸기라고 하기엔 색도 크기도 한참 먼 이 보송한 동그라미를.
짠한 마음이 든다. 유치원에서는 한결 사용하기 편한 1층은 동생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선배반 언니가 되었는데 혼자서 응가 뒤처리 하기는 아직 좀 어렵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건 왠지 좀 무서운데 엄마는 다 커서 뭐가 무섭냐고 다그쳐서 서러운 일곱 살. 내 딴엔 멋지게 추는데 어른들이 자꾸 귀엽다고 웃어서 화가 나는 일곱 살은 어쩐지 짠한 구석이 있다.
이 복잡한 사정의 일곱 살을 대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성숙한 인격체(?)로 대우를 해줘야 하면서도, 또 어느 정도는 둥가 둥가 아기 다루듯 한없이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러나 자연의 순서대로 피고 지고 열리고 떨어지는 것들을 보며 생각한다. 작지만 영글어가는 열매를 보듯 아이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익어가는 중이라고. 맛있게 탐스럽게 자라나는 중이라고.
경험상 '얘가 왜 이럴까'라는 질문이 과거형이 되면(얘가 왜 그랬을까) 정말 머쓱한 답만이 머쓱하게 남는다. 그냥. 정말 그냥. 크느라고.
그 답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서도 또 마주한 황당함 앞에서 묻는다. 얘가 정말 왜 이래.
그럴 때마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한없이 걸어야겠다. 나무도 보고 꽃도 보고 저마다의 속도를 보면서 너는 그냥 자랄 뿐이라고. 나는 그걸 지켜볼 뿐이라고 되뇌어야겠다.
너를 초록의 작은 열매 바라보듯 그렇게 흐뭇하게, 또 기대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자연의 순리대로 익어가는 너를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면... 오직 그게 나의 역할인 것 같아 동동거리고 들썩이던 나 자신이 또 한차례 머쓱하다.
+ 그렇다고 다시는 용암분출이 없으리라고 자신 할 수는 없음을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