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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pr 12. 2021

놀이터 이야기


_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사람은 그들에게 거의 영웅이다.

한 두 칸이라도 손을 떼 이동하는 사람은 멘토 수준 여겨지며 각종 비결 문의가 들어온다. 아이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한 번 두 번 손을 옮겨 이동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마저도 운이 좋을 때(혹은 힘이 남을 때) 가능하다. 하루는 아빠한테 한 칸 더 앞으로 가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은데 자꾸만 손에 땀이 나서 못하겠다고 서럽게 울기도 했다.

반의 잘하는 세네 명을 빼고는 다들 한 두 칸 정도가 최대치다. 구름사다리 한 칸 또는 두 칸에 힘이 닿는 만큼 매달려있다가 폴짝 떨어지는, 꽃잎 같은 아이들.


_ 낯선 감정선

그런가 하면 놀이터 구석에선 소리 없는 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어느 순간 감정이 상했는지 서로 따라다니며 밀치기 시작하는 초등 남자아이들. 막 흙까지 한 줌 쥐어 뿌린다. 야 네가 먼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싸움 말은 조금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의 격투. 여자 아이들은 싸울라치면 허리에 손부터 얹고 보던데. 머리부터 막 새침하게 넘기고 보던데... 아직 미취학 딸 키우는 엄마는 놀란 가슴에 엉덩이를 들었다 앉았다 상황을 지켜본다. 그러다 돌을 들고 뛰어다니길래 가슴이 콩닥콩닥 말려야지 하고 일어서는데 어느새 나란히 앉아 흙 파고 있다. 아이들이 한참을 흙파고 놀 때까지 놀란 가슴은 진정되질 않고. 휴. 굉장히 낯선 소통 방식이야.


_ 갑자기 분위기 상담코너

놀이터 대부분의 아이들은 또래와 노는데 또 놀 친구가 없으면 그 나름대로 동생들의 세계에, 선배들의 세계에 녹아들어 보려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차라리 외로운 게 불편한 것보다 나은 나 같은 어른보다 훨씬 용감하고 따뜻한 아이들. 무슨 소파에 눕듯 구름사다리 위에 편안하게 눕고 앉는 고학년 언니들이 혼자 있는 아이에게 뭐라 뭐라 몇 가지 묻더니 심층 상담에 들어간다. "그래서 걔가 뭐라고 했는데?" "너는 어떤데?" 구름사다리에 올라갈 수 없는 2 학년 아이는 위를 올려다보며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답한다. 내용이 무지무지 궁금해서 몰래 듣고도 싶지만 그들만의 비밀 상담소를 비밀로 남겨주기로 한다.


_ 환상의 짝꿍

하굣길에 한 번 씩 와서 구름사다리를 사뿐사뿐 건너가는 일 학년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오면 우리 집 꼬마는 이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다는 듯 막 우러러본다. 동경의 눈빛을 반짝이며 마음속으로 우와! 우와! 한다.

어느 날은 그 아이가 중간에 멈춰서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할머니를 소리쳐 불렀다. 할머니는 동생을 보느라 못 들으시고, 엉겁결에 내가 안아서 내려주었더니 할머니한테 안겨서 엉엉 운다. 할머니께서 내게 고맙다 하시며, 아이가 건너긴 잘 건너는데 중간에 땅으로 떨어지는 건 못한다고 하신다. 착지라고 쉬운 건 아니구나. 우리 딸은 구름사다리를 아직 잘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착지 선수였네. 잘 못 건넌다고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위로가 될 말들을 주워 담는다.

다음 날 중간에 떨어지지 못하는 그 아이가 다시 왔다. 세 칸 못 가 떨어지는 친구와 구름사다리 중간에서 만나기 미션을 했다. 이윽고 잘 건너는 방법을 설명하는 아이와 잘 떨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친구. 환상의 짝꿍이다.


_ 나도 가끔 와하하 뛰어다니며 놀고 싶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친한 이에게 전화가 와서 우스갯소리로 '놀이터 노역 중'이라고 했다.

놀이터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것이 지루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책을 가져와 읽기엔 엄마 엄마 호출이 잦고, 얼굴은 알지만 데면데면한 엄마들과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 또 멍하니 앉아있기에는 시간이 더디 흘렀다. 그런데 요즘 들어 놀이터 이모저모를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다. 놀이터는 작은 사회. 들여다볼수록 신비하고 재미나다. 놀이터 노역이라는 말은 이제 쓰지 말아야지. 노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친구들이 보고 싶다. 어린이들이 부럽다. 한 번쯤 아이처럼 친구들과 와하하 뛰어다니며 웃어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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