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아이와 진창을 구르는 거란다.
잠깐 마주친 동료가 "오늘 시간 진짜 안 가지 않아요?"하고 지나가길래 몇 시인가 봤더니 오전 아홉 시 반이더라는 웃긴 글을 본 적이 있다.
꿀맛 같던 주말 공동육아가 끝나고 남편은 생업전선에서, 나는 극한 인내심 훈련소(물론 우리 집)에서의 한 주가 시작된 월요일 아침, 꼬맹이의 징징대잔치가 느닷없이 개최되었다. 아마도 동틀 녘에 기상하여 오전부터 잠 기운이 살짝 돌았던 것 같다. 그러게 왜 일출과 함께 기상하는지,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지, 정글의 법칙인지... 궁금했지만 무서워서 감히 묻지는 못했다.
징징의 내용인즉슨 이랬다. 조개를 주으러 바다에 가고 싶은데 도대체 겨울은 언제 끝나느냐, 엄마 입술이 건조해 보인다, 립밤을 발라주겠다, (립밤을 발라주며) 엄마 립밤은 있는데 왜 내 것은 없느냐, 당장 사내라 엉엉... 아침 먹고 수혈한 카페인이 벌써 간당간당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아니, 아홉 시 반?! 눈 비비고 시계를 다시 봤다. 시계는 억울하다는 듯 째깍 소리를 내며 자신의 근면함을 어필했다.
으르쓰 으르쓰! 으르쓰!!!
아침부터 징징대잔치에 당첨되면 컨디션 때문인지, 기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패턴이 종일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런 날은 아무리 노력해도 '징징 레이더망'에 걸리고 만다. 그냥 포기하고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 민폐 끼치는 것을 제외한) 웬만한 것은 받아주도록 한다. 받아주고, 또 받아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한다.
계속 징징댄다. "그래, 알았어"가 "그르 으르쓰"로 바뀌어도 징징 대파티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인중이 달궈지며 분노의 콧김이 나오기 시작한다. 부글부글 끓다가 마지막 한 방의 징징이 더해지면 단전 깊이 끌어올린 고함과 함께 분노의 불꽃이 화려하게 터지고 만다. (배경곡으로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좋겠다.)
아이가 세 돌이 넘어가면서는 어느 정도 타협과 회유가 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아직 징징 전쟁은 휴전일뿐, 종전이 아니다. '쟤는 내가 낳았지 누가 시켜 낳은 것이 아니다’,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먹고 싸는 것이 저 아이의 임무니 더 바라면 안된다, '쟤는 세 살, 나는 삼십 세 살이다’ 류의 인내에 도움이 될만한(?) 다짐들도 떠올려보지만 오래 끓어온 분노의 용암은 그만 예고 없이 터져 나오고 마는 것이다.
생떼엔 방법인 읍단다
아이의 징징거림에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검색해보니 "아이 감정이 다 소진되어야 끝이 나니 그냥 두세요." 같은 조언이 많던데... 아니, 선생님들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저 죽으면 사리 몇 개 나오나요? (...)
많은 엄마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있는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그 시기에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며, 떼를 충분히 써야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기 달래기' 능력이 어른보다 미숙하니 진정시켜보고 아이의 울음이 견디기 힘들면 이어폰 꽂고 음악이라도 들으라고. 하지만 떼쓸 때 부모보다 힘든 건 아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떼를 쓰고 자기감정을 표현해야 감정이 튼튼해지는 거라고 한다.
그래, 애도 종일 울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또 성능 좋은 멘탈탈곡기에 몇 시간 털리고 나면 결국 한 마리 익룡이 되고 마는 것. 그게 나다. 인정하기로 한다. 그저 수시로 마음을 비우고, 받아주고받아주다 가루되어 흩날려갈 내 영혼도 보듬어 주고, '미운 네 살' 검색해서 다양한 억지들로 안구즙을 짜내는 어린양들을 보며 나만 이런 거 아니구나, 우리 애만 이런 거 아니구나 하며 뜻 모를 위안을 삼을 뿐.
육아는 아이와 함께 진창을 구르는 거란다. 오늘도 신나게 잘 굴렀다.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 원하는 생명수 하나 털어 넣고 또 같이 울고 웃을 내일을 기대하며 (혹은 두려워하며) 잠든 아이 곁에 살포시 누워본다.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든 아이를 보면 잡념이 다 사라진다. 키우는 행복도, 수고도 별 것 없지 싶다.
아이의 '바다 가고 싶다'와 '립밤 내 것도 내놔라' 사건은 바다 소풍과 귀갓길 립밤 구매로 종결되었지만 세 시간의 야외활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애미는 참깨를 쏟아 그야말로 깨 쏟아지는 풍경을 현실감 있게 연출한 아이에게 가차 없는 샤우팅을 날렸다는 비보를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