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육아에 정신없던 시절을 보내고 이제 내년이면 아이가 학교에 간다.
부모님께 육아를 부탁할 상황이 아니었고, 돌쟁이 아기를 두고 복직할 자신이 없어 커리어 대신 전담으로 육아하는 것을 택했다. 이를 내 손으로 경력을 단절했다고 말해야 할지, 상황에 떠밀려 단절되었다고 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배 안에 있을 때만 해도 그저 베이비파우더 향 같은 일상만 떠올렸던 것 같다. 바보같이 몰랐다. 인생의 어떤 이벤트도 이벤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적인 문제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이한다. 파티가 끝나고 치워야 할 먹다 남은 케이크와 지저분한 접시들처럼.
출산 이후의 삶. 나는 그 앞에서 모든 것이 막연하고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저 으앙으앙 우는 아이만이 현실감각을 일깨웠다. 복직 또는 퇴사. 선택에 따른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객관적으로는 떠올려볼 수 있었지만, 진짜 겪어보지 않는 이상 어떤 것이 더 버틸만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전업 양육자가 되었다.
가끔 워킹맘인 친구를 만나면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에 대하여, 퇴근하고 육아하는 것에 대하여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어떤 선택이든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다. 일을 선택한 친구는 매일이 다른 아이의 눈부신 성장을 자꾸만 놓쳤고, 아이와의 시간을 선택한 나는 이름을 점점 잃어갔다.
병원이나 은행을 가지 않으면 내 이름을 들을 일이 별로 없었다. 새댁, 아기 엄마, 누구 엄마, 어머님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나의 유일한 과업은 육아와 약간의 살림이 되었다. 집 안에서 자기 몫을 살뜰히 하며 그 안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것, 집이 집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들에는 분명 나의 공이 있었지만 그런 공은 후, 불면 사라지는 먼지처럼 희미했고 어떠한 물성도 갖지 못했다. 자신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는데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동안 나는 공벌레처럼 작은 자극에도 몸을 움츠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와 함께하는 다정한 시간 속에서 종종 느껴지는 무력감이 나를 더 죄스럽게 만들곤 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인 것이 축복 같다가도 돌아서면 나는 엄마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옥죄던 시절이 조금씩 지나간다.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 자라 내 손이 덜 필요해졌고, 요즘 나는 내 이름이 어디에서 불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아이 엄마가 되어서도, 그 어떤 상황이 되어서도 내 이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아 말고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둘러본 엄마들의 세계에는 다양한 시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재주가 좋아 뭔가를 만드는 사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 아르바이트로 경제적인 숨통을 틔우는 사람, 자기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
최근 독립출판 수업을 듣고 있다. 왜 이 수업을 신청했는지 묻는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전업으로 육아하는 삶에 출구가 없다고 느꼈다고. 성취하는 나를 보기 위해 이 수업을 신청했노라고. 부끄럽지만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누가 찾지 않더라도 나는 내 이름을 스스로 불러주기로 했다. 자꾸만 내 이름을 어딘가에 내걸고, 부르고, 또 불려서 엄마라는 역할에 모든 누명을 덮어 씌우려는 행동만은 피해야 했다.
나처럼, 공벌레처럼 동그랗게 몸을 모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누구나 언제든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동그랗게 만 어깨를 펴고 주춤주춤 손을 들며 "나 여기 있어요." 한다. 열심히 꼬물거려서 이름 불리지 못한 사람들, 자꾸만 희미해지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나도 그래요, 나도 그랬어요 하는 목소리를 모으는 그런 장을 만들고 싶다. 내가 용기를 얻었듯 받은 용기를 돌려줄 날이 왔으면 하고 움찔움찔해본다. 비 오는 날 느린 걸음의 달팽이처럼.
<엄마의 이름> 유은경
친해 보이는데도
엄마들은 왜
서로 이름을 안 부를까?
앞집 아줌마는 언니라 하고
내 친구 엄마는 미나 엄마,
슈퍼마켓 아줌마는
엄마를 천사호라 부른다.
내 이름 속에
우리 집 1004호 뒤에 숨은
엄마 이름
낯선 사람이 부른다,
시원시원하게.
"유은경 씨, 택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