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찬 비가 종일 왔다.
유치원은 집 앞이지만 하원 후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줘야 해서 더 막막한 빗줄기. 아이와 만나 우산을 하나씩 나눠 쓰고 길을 걸었다.
"엄마 왜 거기로 가?"
"응, 우리 비 오니까 더 빠른 길로 가자!"
아이의 물음에 왠지 명석해 보이는 표정으로 답했지만 아뿔싸, 내가 택한 지름길은 그야말로 수문이 열린 댐처럼 빗물이 콸콸콸 흐르는 흙길이었다. 중간중간 큰 웅덩이도 많아서 주춤거리며 다음 발을 내딛을 곳을 궁리해야 했다.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가 마음속으로 울려 퍼지는 장엄한 흙탕물의 흐름이랄까.
나와 아이의 발은 흠뻑 젖어버렸다. 아이는 험준한 코스를 안내한 나를 별다른 짜증 없이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 나야 집으로 돌아오면 되지만 축축하고 찝찝한 상태로 또 한 시간을 보내야 하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평소 십 분 남짓이면 갈 거리를 하천에서 익사이팅 스포츠를 한 시간 불태운 느낌으로 걷고 돌아와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지름길이 꼭 좋은 길은 아니었네- 하고 한숨을 내쉰다.
집에 오는 길엔 물 빠짐이 좋은 샌들을 챙겨가 갈아 신기고, 비가 쉬이 고이지 않는 깨끗이 정비된 길로 걸어왔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저녁 무렵의 비를 맞으며 씩씩하게 걷는 아이와 나. 간간히 거센 바람이 불어와 아이의 우산을 헤까닥 눕혔고, 우리는 그때마다 빗줄기를 맞으며 깔깔 웃었다.
비 내리는 것은 원래도 좋아하진 않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그렇게 되었다. 혼자서 비 오는 날을 맞는 기분은 나름의 운치가 있지만 아이와 함께 비 오는 날 집을 나서면 이거 뭐 거의 사투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곳 제주는 바람이 많아 비가 가로로 내리니 우산을 써도 다 젖기 일쑤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은 우산을 제 힘으로 들기도 버거워하기 때문에 우산 하나를 아이에게로 기울여 같이 쓰고 집에 오면 비 맞은 생쥐가 따로 없었다. 따로 방법이 없어 그렇게 바람과 비를 맞고 다닌 아이는 그새 훌쩍 더 커 제 몫의 우산을 씩씩하게 들고 걷는다.
여전히 삶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인생에서 좋은 일이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일이 다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비바람이 지난 다음 날 찬란하게 빛나는 빛나는 나무를 보며, 뒤집어지는 우산에도 까르르 웃는 아이를 보며 배워간다.
+ 이후 아이는 맑은 날에도 지름길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고, 빨래를 하려 꼬마의 외투 주머니를 뒤지니 며칠 전 비에 젖었던 양말이 큼큼한 냄새와 함께 애매하게 말라가고 있었다는 비하인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