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사진첩은 종종 '#년 전 오늘'을 보여준다.
이 기능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와 함께 사는 내게 꽤나 큰 기쁨이다. 고작 1년, 2년 전인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귀여움에 바보처럼 히죽히죽 거리곤 한다.
오늘 휴대폰 사진첩이 보여준 것은 4 년 전 오늘의 영상이었다. 세 살이었던 아이는 식탁에 물그릇 하나 떠놓고 숟가락으로 젓고, 손을 씻고 휘휘 돌리기도 하며 장난을 치고 있다. 나름 수건도 깔아놨지만 이미 식탁은 흥건하다. 아이는 묶이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참새 꽁지처럼 양쪽으로 겨우 묶고 통통한 팔로 열심히 물장난을 친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으로 휘젓고 장난감도 넣었다 뺀 물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려고 든다. 화면은 황급히 식탁 바닥으로 내쳐지고 영상 속 내 목소리는 "아니야, 그거 먹는 물 아니야~"하고 아이를 말린다. 즐겁게 물놀이를 즐기던 아이는 세상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나, 뭐 그게 대수라고 저 아기를 울렸을까!
지금 보니 유난을 떨며 안된다고 하는 영상 속 내가 이해되질 않는다. 마시는 물로 바꿔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냥 좀 마시게 두어도 됐을 텐데. 왜 나는 "아니야, 먹는 물 아니야"만 그렇게 다급히 외쳐댔을까. 돌아보면 그런 일들이 많다. 어머님이 돌쟁이 손녀 예쁘다고 초콜릿을 먹이셨을 때는 속으로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어린 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 마음이 어찌 한시라도 편하겠냐만은 지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둘셋 키우는 엄마들의 내공 있어 보이는 모습은 아무래도 이런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이의 네 살 무렵 사진과 영상을 보면 놀이터에서 울고, 누워서 울고, 안겨 울고 다양한 오열샷들이 많다. 끝내주게 자기주장을 펼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날마다 당황했고 때론 화를 내기도 했다. 이제야 그 사진들을 넘겨보며 그땐 그랬지 하고 웃는다.
아직도 나는 매년 처음 겪는 연령의 아이 엄마가 된다. 예상 못한 일들이 방심한 내 배에 원투펀치를 날린다. 요즘 아이는 생각이 자라고 어휘도 늘어서 말이 청산유수다. 때로 뾰족한 말들로 헉, 하고 찔릴 때도 있다. 화가 나서 머리가 뜨거워질 때도 있다. 할 수 있는 말은 많지만 여과해서 말하는 방법은 잘 모르는 시기다. 이 또한 네 살 무렵 오열과 통곡의 시간을 지나온 것처럼 지나갈 것이고, 어쩌면 여과해서 말하는 법을 너무 잘 알아 섭섭한 시절이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다고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이 조금 더 여유롭고 신중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의 하루는 매일 새롭게 어처구니없고 때로는 옹졸하게 느껴진다.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지난 사진들을 뒤적이다 보면 어찌 됐든 아이와 내가 손을 잡고 오늘도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겼음에 의미가 있음을 깨닫곤 한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천체 사진작가 권오철 님의 인터뷰였는데, 밤하늘의 별을 찍다 보면 자신이 우주의 먼지처럼 느껴진다고, 이왕 사는 것 행복한 우주 먼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행복한 우주먼지'라고 적어두었다.
이왕 대단치 않은 존재로 태어나 먼지 같은 삶을 산다면 더 행복하게 뒹굴고 싶다. 먼지 같은 일들 그저 코 풀 듯 팽 풀어 버리고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지. 먼지. 먼지... 하고 읊조리다 보면 뭔가 알려주고 키워줘야 할 너는 없고 그저 꼭 끌어안을 너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