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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05. 2021

노란 식탁등 아래 앉아 글을 씁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직업을 선망했다. 지나 보니 그렇다.

학생 때는 여러 갈래길 앞에서 원하는 것을 또렷이 보지 못했고, 졸업하고는 여유 없는 현실에 맞춰 성급히 걸었다. 잠깐 직장 생활을 멈추고 방송 작가 아카데미를 다닌 적도 있었는데 막내 작가로 일을 시작하고는 뒤집어진 피부와 벌건 눈이 민망하도록 적은 돈을 받았다. 더 버티기가 힘들어 그렇게 나는 두 손 들고 나왔다. 한 번 도전해본 것으로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학자금 대출, 결혼과 승진, 출산과 퇴사 등 여러 가지 이슈에 등 떠밀려 글을 잊고 살았다.


종일 아이와 씨름을 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아이를 재우고 마시는 맥주 한 캔으로 그럭저럭 하루의 피로를 털 수 있었지만 지속성은 없었다. 매일 새로운 캔을 따는 것은 간에도 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늦은 밤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맥주 한 캔이 내 육아 생활을 가볍게 환기시켜주었다면, 글은 뜨거움 속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시원해지는 참숯 불가마 같은 것이었다.

예전처럼 '뭐가 되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기록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하루가 한 줌 재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았다. 아이의 어눌한 말이 귀여워 적어두기도 하고, 유독 힘들었던 날은 아이가 왜 그랬을지 나는 또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형사의 사건 수첩처럼 경위를 적어나가기도 했다.


아이는 물론 내 애씀으로 하루하루 사랑스럽게 커갔지만 마음 어딘가가 텅 빈 것 같았고, 그러한 감정은 또 다른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포동포동 아이가 살찌는 동안 지우개처럼 닳아가는 내 모습. 모성에 대한 의문... 여러 겹의 감정이 나를 뒤덮어 혼란스러웠다. 산후우울증세라는 게 아마도 그런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 아닐까.

행복하면서도 문득 우울했고, 적적하면서도 즐거운 날들이었다. 양가적인 감정들이 규칙 없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엉킨 실타래를 품고 식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앞뒤를 살피는 것은 맥주 한 캔 마시는 것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렇게 진을 빼며 뜨겁게 나와의 사투를 벌이면 시원해졌다. 비록 내일이라고 달라질 일상은 하나 없었지만 내 마음을 그대로 용납하게 되었다. 글들이 '그럴 수 있어' 하고 나를 토닥여주었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인사를 제대로 못하는 것과 나눔을 모르는 것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 글을 썼다가 지웠다. 아이의 행동이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었다. 흔히 '됨됨이'라는 영역에 속하는 것들. 됨됨이는 주로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거론된다. 걸으며 생각했다. 왜 그럴까. 왜 나는 그 글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지웠을까. 가난한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원망과 연민 같은 건 잘도 쓰면서 왜 그런 이야기는 내뱉지 못할까. 그런 것들은 내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인성에 대한 잣대가 높았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 모습이 양육자로서 보기 싫었던 것이다. 아이는 내 면을 세워주는 존재도 아닌데, 그 민망한 감정은 내가 처리해야 할 문제 아닌가. 적어도 아이를 비난할 문제는 아니었다.

글을 쓰다 보면 자판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나오던 자동적인 반응(감정)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다. 행복해서 미안해서 고마워서 무료해서 식탁에 앉아 그 마음들을 또르르 풀어본다. 머리가 복잡할 땐 다다다다 적어 내려가기도 하고, 마음이 허 할 땐 깜빡이는 커서만 멍하니 노려보기도 한다. 글을 써 저장하든, 다시 다 지워버리든 쓰기 전의 나와 쓴 후의 나는 다르다. 그 개운한 맛을 잊을 수 없어 나는 쓴다.


정신없던 주말이 지나고 나는 오늘도 남편과 아이가 떠난 조용한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사진이 남겨줄 수 없는 그 순간만의 공기와 색감을 저장하고, 아이와의 한때를 더 애틋하게 어루만진다. 먹어치운 밥만큼 많이도 싸는 내 경솔함에 머리를 쥐어 뜯기도 하고, 내 안의 어린아이를 쓰다듬기도 한다. 노란 식탁등 아래 앉아 골똘히 궁리하는 내 모습이 나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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