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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22. 2019

학습지 하면 뇌가 더 '고퀄'이 되나요?

"어머니~ 6세면 뇌 90%가 완성되는 거 아시죠?"

"어머 아이가 너무 예뻐요~ 몇 개월이에요?"


빚쟁이도 아닌데 멀리서라도 보면 후다닥 피해 가는 것이 있다.

바로 학습지 영업 가판.

풍선은 기본이요, 아이 영혼까지 홀리는 반짝반짝 라이팅 반지부터 스티커까지 그들의 미끼는 일단 아이에게 던져진다. 아이는 무조건 미끼를 물게 되어 있으므로 아이가 보기 전에 경로를 빨리 바꾸는 게 상책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학습지, 우유 등의 가판이 즐비한 동네 대형마트 앞을 지날 때면 매번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은 타깃이 되었다. 완연한 미소를 띠며 아주머니들은 운을 뗐다. "어머~ 아이가 너무 예뻐요. 몇 개월이에요?"

아이가 예쁘다는 사탕발림은 일단 조심해야 한다. 그 말에 넘어갔다가는 집에서 책은 많이 읽어주시냐, 단어는 많이 아느냐, 아이 뇌는 생각보다 일찍 형성된다, 다중지능검사를 받아봐라... 까지 가게 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맘마, 응가 밖에 모르는 아기에게 다중지능검사가 웬 말?

말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학습지를 들이밀며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듣고 해보지도 않은 학습지에 확 질려버렸다. 그 이후로는 봐도 못 본 것이요, 들려도 안 들은 것이라 하며 화장실 급한 여자처럼 영업 가판을 스쳐가기 일쑤였다.



받아 온 팸플릿을 각 잡아 식탁에 올리더니 "엄마 이거 고기 구울 때 쓰면 좋겠다!" 하는 너는 역시 뇌가 고퀄이야...!



"6세에 뇌 90%가 완성되는 건 아시죠?"


제주에 온 지 몇 달 안되어 방심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에 학습지 영업차가 올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나 보다. 멀리서도 번쩍이는 불빛과 나열된 책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우와~ 저거 뭐지?" 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도시의 불빛을 그리워했던 것인가!) 아마도 이동하는 도서관 같은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상황 파악 못하고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녀를 영업사원이 홀랑 데려와 "어머 어머님이 너무 예쁘세요~"로 묶어 두었다. 이런, 학습지계의 영업은 아이 칭찬이 정석인데 최종 의사 결정자를 노리는 틈새전략이라니! 완전히 당해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그림을 고르고 이름을 입력한 후 네임 스티커를 만들어 이미 손에 들고 있었다.


"6세에 뇌 90%가 완성되는 건 아시죠?" 우리 동네 학습지 선생님이라는 분이 대뜸 이렇게 운을 뗐다. 다섯 살이라는 아이에게 일 년은 한글 떼는 시간으로 보고, 6-7세부터는 초등 대비를 해야 한다고...

예... 뭐, 그럴 수도 있죠. 뇌가 90% 완성된 들 학습지 하면 더 고퀄리티로 완성되나요... 이 밑도 끝도 없는 '엄마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상술을 듣자면 때로 짜증이 난다.

물론 학습지가 도움이 되는 때도 있을 것이고, 또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 놀이 삼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필요'로 인한 교육보다는 상술에 현혹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엄마들의 불안'을 먹고사는 학습지, 그런 불안을 '구매'로 메꿔보는 부모... 너무 어린아이들에게 들이미는 학습지 팸플릿에 이골이 난다.



'뇌 발달은 만 3세에 완성된다'


유아 대상의 학습지 시장에서 많이 쓰이는 문구다. 과학적 지식이라곤 도깨비 도로의 원리 따위 밖에 모르는 내가 검색해보니 사실이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영유아기에 전체 뇌의 골격과 기본 회로를 만들기 때문에 오감을 통한 고른 자극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자극은 교재, 교구가 아니라 부모의 스킨십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없는 환경 등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어머님~ 늦었어요." 하는 이야기에 현혹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 골든타임? 모르시는 말씀. 똥꼬발랄 만 4세. 잘 놀고, 잘 뛰고, 잘 구를 나이라는 건 아이들이 더 잘 안다.



정신 차려보니 한글과 숫자 포스터를 돌돌 말아 손에 들고, 핸드폰 번호를 불러주고 있었다. 엄마가 마이쮸 사주냐 안 사주냐에 일생일대의 희로애락이 걸려있고, 연습 또 연습 끝에 네모 주머니 접기(종이접기)를 혼자 하는 것에 세상 다 얻은 듯 기뻐하는 아이를 앉혀놓고 관심 없는 한글을 가르칠 생각은 없으니 (그리고 돈도 없...) 연락이 오면 일단 남편을 팔아야겠다. "남편이 반대해서요.."


그나저나 받아 온 팸플릿을 열심히 각 잡아 세우더니 고기 구울 때 쓰면 좋겠다 말하는 우리 딸은 역시... 뇌가 고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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