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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20. 2019

조심해 엄마는 언제 변할지 몰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아이를 키우며 머쓱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아이 앞에서 '면'이 서질 않는 순간이다. 

거기에 아이의 천진하고 의아한 표정이 더해지면 시계를 오 분만 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불행히도 그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얼마 전에도 날씨가 좋아 아이와 둘이 바다 소풍도 다녀오고 선물도 사주고 룰루랄라 집에 들어왔다. 아이와 택시 잠깐 타고 멋진 바다를 보러 갈 수도 있다는 설렘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한 마음, '언제 이렇게 커서 둘이 데이트를 하나!' 하는 뿌듯함... 여러 감상들이 뒤섞여 사진도 잔뜩 찍고 아이에게 달달 구리도 사달라는 대로 사줬다. 그러나 문제는 내 몸. 충분한 수면도, 원샷 투샷 털어 넣는 카페인도 감당 못하는 저질 체력이 문제였다. 


아직 익숙지 않은 동네 탐방의 긴장감, 아이가 지치기 전에(안아달라고 하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는 미션, 한껏 업되어 귀여움과 민폐의 선을 넘나드는 아이의 행동 등으로 알게 모르게 피곤했던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부터 완전히 지쳐버린 것이다. 집에 와 티브이를 틀고 널브러져 있다가 저녁을 차려주는 데 아이가 실수로 참깨를 바닥에 쏟아부었고, 나는 일단 크게 숨을 쉬고 얼른 치우려 했다. 만지지 말고 두라는 말을 듣지 않고 갑자기 시작된 아이의 참깨 오감놀이에 내 안의 맹수는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이 입장에서는 종일 친절하고 상냥했던 엄마가 '돌연' 변신하니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사과하고, 잘 때도 충분히 이야기하지만 시계를 되돌릴 순 없는 일이었다. 


배터리 나가서 사족보행하시기 전에 귀가해야 하는 것이 외출의 포인트 미션! 


엊그제도 역시 좋은 날씨에 나가자고 조르는 아이를 데리고 버스도 타고, 케이크도 먹고, 쇼핑과 산책도 하며 신나게 데이트를 즐겼다. 그리고 집에 와서 티브이를 두 시간이나 틀어줬다. 심지어 그만 볼까 하는 아이에게 더 재미있는 것을 틀어주면서.(!!!) 

가끔 집에 와 널브러져 헉헉대는 나를 보면 그냥 집에서 '지루하지만 체력을 축내지 않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까?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재미있게 놀아주고 지쳐서 화를 낸다거나 나가떨어지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체력의 난(?)이겠지만 그 외에도 앞 뒤가 다른 상황은 많이 발생한다. 


"소리 지르는 거 아니야! 그러면 안돼!" 하던 나는 가끔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굉음과 함께 불을 뿜어 내고, 말 잘 들을 때엔 세상 인자한 얼굴로 "우리 딸, 언니 다 됐네~"하던 나는 맡기기 못 미더운 일엔 "아직 어려서 안돼!" 한다. "휴대폰 보면 눈 나빠져"하고 잠시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하면 휴대폰에 얼굴을 묻는다. 


엄마 용가리로 변신 오 초전. 숨자!


나열하다 보니 이런 모순 왕이 없다.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숨이 차서 그만두도록 한다. 

인간은 모순의 동물임을 보여주는 위험한 산교육의 현장... 바로 우리 집. 

한결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들 이야기하지만 그건 성인끼리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일 테고, 아이는 아직 어린데 이런 엄마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엄마 일상의 18번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종일 피곤하다가 아이가 잠들면 분연히 잠을 떨치고 일어나 '오늘의 엄마 성찰'을 밤늦도록 하고, 내일 아침도 피곤할 예정인 모순 왕 엄마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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