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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Oct 06. 2022

가을비와 대리석 식탁

모처럼 일산 친정집에 갔다.

나는 오래된 아파트와 산책로의 큰 나무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적당히 어우러진 1기 신도시 분위기를 좋아한다. 서울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하면서도 편의 시설은 고루 존재하는 곳. 서귀포에 살면서 일산을 조용하고 한적하다고 말하기는 좀 우습지만 오래 살아온 동네 특유의 나만 아는 정취가 한몫하지 않나 싶다.


모양을 크게 달리한 광화문 광장을 지나 일산행 버스를 탄 나는 약간 흥분 상태였다. 시청 앞 은행나무들은 새파란 초록을 지나 노릇노릇 익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서울역을 지나고 예전에 다녔던 회사 근처를 지나고 공부를 굉장히 잘해야 갈 수 있는 대학교를 지나며 (아이는 때마침 정류장에 앉은 사람이 인공눈물 넣는 것을 보며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친정에 가는 길은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기쁨도 있지만 어리고 젊었던 나의 시절 시절들을 추억하는 맛이 있다. 취업 준비하던 시절의 도서관과 강아지와의 산책. 지친 저녁 귀갓길과 설레던 데이트. 거의 코가 닿을 만큼 차창 가까이 얼굴을 대고 나의 지난날들을 바라보았다.





이틀을 엄마 집에서 보내니 쉬엄쉬엄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고, 탁 트인 공원에 나들이도 갈까 했지만 무려 1.5일 동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대한민국 최남단 서귀포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가을빛 물든 나무를 보며 걷고 싶었는데. 마침 지역 가을 행사 중이라 길거리 공연도 많이 있다고 했는데… 길고 많은 비에 밖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심심했던 나는 친정집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자식 둘이 장성해 독립하고 부부만 남은 집. 오래 전, 처음 시작하는 아파트 생활에 설레며 급히 장만했던 가구들은 어딘가 깨지거나 표면이 들떠있었고 벽과 바닥은 살아온 세월만큼 낡아버렸다. 시트지의 끄트머리가 일어난 조악한 옷장, 처음엔 화사한 연두색이었으나 와사비 간장색이 되어버린 포인트 벽지, 딸이 어렸을 때 화장대 거울에 붙여둔 보석 스티커, 겨우겨우 윤을 낸 오래된 욕실…

특히나 무겁고 둔탁한 대리석 식탁은 늙고 힘 빠진 가장처럼 좁은 부엌의 구박데기가 되어 있었다. 가운데가 콕 깨져 위에 테이프를 덧댄 그것은 구차한 모양새에도 여전히 근엄한 척을 했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엄마는 저놈의 식탁을 갖다 버려야 하는데 버려야 하는데 하며 주방을 오갔다. 너무 무거워서 둘이선 버릴 엄두도 못 낸다며, 어디 일꾼을 불러다 돈 주고라도 버리고 싶다며. 분명 사위가 그런 말을 흘려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한 말일 테다.


우리는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식탁을 비롯해 그간 엄마가 버리고 싶었던 가구들을 대형 폐기물 쓰레기장에 옮겨 놓았다. 첫 타자는 당연히 대리석 식탁이었다. 상판과 식탁 틀, 다리를 분해해 두고 경비실에서 수레를 빌려 대리석 상판부터 옮겼다. 맨정신에 가위눌리는 기분은 이런 기분일까. 과연 압도적인 무게였다. 상판 하나만 따로 분리해 싣고 가면서도 아빠, 남편, 나 셋이 진을 쏙 뺐다. 차례로 식탁 틀과 다리, 의자들, 오래된 거실 테이블이 집에서 나갔다. 숙원사업을 해결한 엄마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소고기를 쐈다.






종일 내리던 가을비는 그쳤고 다음 날 아침은 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구나. 가을비가 이제 시작이라고, 이제 단단히 옷깃을 여며야 한다고 예고를 하고 갔구나.

전날과 달리 집은 텅 비었다. 아직 주문한 가구들이 오려면 멀었고, 부엌엔 급한 대로 고동색 교자상이 단출하게 놓였다. 횅한 거실엔 누런 카펫만이 깔렸다.

언제부턴가 친정집에 오면 내가 살던 그 집이라 정겹다기보다 내가 살던 그 집이 아닌 것 같아 묘하게 슬퍼졌다. 낡아서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한 집. 얇아져 혈관이 다 보이는 엄마의 피부처럼, 듬성듬성한 아빠의 머리처럼. 부부의 혈기 왕성한 시절은 가고, 고장 나고 일어난 부분을 그럭저럭 덧대고 붙이며 살아가는 시절이 온 것이다.


“엄마 다리 수술해서 그런가. 청소가 어려운지 바닥이 영 찌뿌둥하고 끈적해.”

발가락을 들고 엉거주춤 걷는 남편을 보고 내가 철없는 소리를 하니 그가 면박을 준다.

“어른들 사시는 집이 다 그렇지.”


자꾸만 쓸쓸해지는 내 속도 모르고 아빠는 베란다의 화초들 자랑 일색이다. 밥 먹으며 김이 들어있는 반찬통에 왜 ‘냉잇국’이 적혀있냐 물으니 엄마가 답한다. 집 비울 때 아빠 드시라고 냉잇국, 김칫국, 뭇국 종류별로 해놓고 다녀왔다고. 다행히 가부장의 끝판왕이었던 아빠는 콕 깨진 채로 근엄을 잃지 않는 대리석 식탁의 포지션을 내려놓고 집안일에 협조적인 반려인이 되기로 했는지, 쓰레기를 내다 버리느라 분주하다.

부부 싸움을 지겹게 직관해 온 딸은 뒤늦게 그럭저럭 덧대고 붙이며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낡은 집의 낡은 집기들과 생기발랄한 화초와 손녀딸의 사진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집을 둘러보고 있자니 어느새 깊숙이 들어온 가을빛이 텅 빈 거실을 채운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 제 자리에 앉는다.

불타는 열정에 가리워졌던 고운 얼굴 들어

미소를 보내는 시간”


좋아하는 가수 이소라의 노래, <가을 시선>의 일부다.

깊어지라고 더 깊어지라고 노래하는 목소리처럼 낡고 쓸쓸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에 가을빛이 드리우니 그대로 또 근사하다. 마흔이 코 앞인 나는 이제 적당히 살아본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나는 쓸쓸함 속에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보다는 그저 슬퍼하기만 하는 애송이였다. 가을비가 주고 간 선득한 바람 속에서 깊어지는 것들을 본다. 쓸쓸함 속에 깊어지는 사람과 사랑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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